민방위 훈련 8분. 이럴꺼면 차라리 없애라

2009. 6. 16. 21:11세상은

어제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방위 훈련 통지서가 와있다며 오늘 7시까지 부평 부개3동에 위치해 있는 부흥중학교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주소가 누나집으로 되어 있어 통지서가 그리로 갔고, 훈련도 그 근처로 편성되었다.)

아침 7시. 출근 시간이 9시인데 7시까지 가려면 5시 반에는 일어나서 씻고 6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1년에 1시간 받는 민방위 훈련이라고 하는거 보니 현재 나는 5년차 이상인것 같다. 기억에 작년에 받고 올해 받는 것 같으니 말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착한 부흥중학교.

부개3동 동장과 직원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민방위 교육 안내서와 출석부를 돌린다. 이사람들도 새벽부터 뭔 고생이냐..
7시 정각. 동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한다. 그 내용이 민방위 교육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인천도시축전에 관한 홍보. 그리고 땡.

법으로 1년에 1시간 받기로 되어 있는 소집 민방위 훈련은 단 8분만에 끝나가 각자 출근길을 떠난다. 도대체 이게 뭐냐? 뭐란 말인가? 기껏 8분 민방위 교육과 인천도시축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한단말인가. 그리고 중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8분정도 서서 다 아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된단말인가?

매년 똑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민방위 교육 안내, 안받으면 과태료. 그리고 약간의 정부 정책에 관한 홍보 그러면 길어야 10분. 출석체크 하고 난뒤는 돌아간다. 공무원들도 고생이고 국민들도 고생인 민방위 훈련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할 바야 아예 없애는게 훨씬더 국익아닌가?

이런 민방위를 왜 하게 되었는지 잠깐 찾아 보았다. 그전에 먼저 잠깐 예비군 창설의 배경을 살펴 보자.

1.21사태, 프에블로호 납북사건,해군 56함 및 EC-121기 피격등 일련의 북괴 도발을 계기로 예비전력의 확보를 위해 1968년 4월 1일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다. "내 마을 내가 지키자,싸우면서 건설하자!~"는 슬로건아래...... 2년 남짓의 군대 생활도 모자라 동원 4년, 향토 4년 8년을 또 군복을 입고 훈련 받아야 한다는게 참 죽을 맛이 아닌가? 뭐 이런 지랄 맞는 경우가 다 있나. 암튼 이렇게 예비군이 창설되었다.

1975년 3월 제 2땅굴 발견(고랑포 부근 제 1남침땅굴 발견.74.11.15,철원 2땅굴 75.3.24, 문산 3땅굴 78,10,17)과 동년 4월 월남패망에 자극을 받아 1975년 7월 25일 민방위 기본법이 제정 되었고, 같은해 8월 22일 시행령 제정, 공포. 같은해 8월 26일 중앙과 지방에 민방위기구 설치. 같은해 8월 26일~9월 15일 민방위대 편성. 같은해 9월 22일 민방위대 발대하며 창설 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국가 위기 사항에 대한 대처하기 위한 대응책인 것이다.

실제 민방위 훈련시 나눠주는 한장짜리 유인물을 보면 민방위 기본 사항이라해서 민방위에 대한 정의가 나와 있다.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도하에 주민이 수행하여야 할 방공, 응급적인 방제, 구조, 복구 및 군사 작전상 필요한 노력지원 등 자위적인 활동.

정의는 참 그럴사 하다.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1년에 8분의 교육으로  과연 위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년에 4시간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도 왜 여기서 4시간이나 죽때리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4시간 동안 하는 것은 지자체 단체장이 나와 자신의 업적을 이야기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안보 교육이 다였다. 국사작전상 필요한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다. 이게 뭐냐고~~

이런데 민방위 교육 꼭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당장 없애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