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처음 접한 5.18
2009. 5. 18. 10:54ㆍ세상은
내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 접한것은 바로 9살. 국민학교 2학년때 일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
당시 우리집은 할머니부터 부모님, 누나, 나, 내동생까지 모두 성당을 다니는 독식한 가톨릭 신자였다. 외가집 역시 가톨릭 신자였고, 나를 비롯 누나와 동생은 유아세례를 받고 복사며 전례단 활동을 했을정도이다.
당시 다니던 성당이 구로본동 천주교회였다. 주말에 주일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 바로 성당이었다. 지금은 별로 먼거리가 아니지만 당시 어린나이에는 상당히 먼거리였다. 성당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을위해 셔틀 버스를 운영하였고, 그 버스를 타고 나와 내 동생은 주일미사를 드리로 가곤 했다.
아마 9살 이마때 였을 것이다. 초록이 우거지고 그렇다고 그렇게 덥지는 않았으니까.
그날도 집에가기위해 성당앞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막 떠들고 있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계셨다.
어린나이 호기심에 아저씨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난 빼꼼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보고 계신 것은 잡지 같이 생겨서 흠백 사진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책이었고, 군인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진들이었다. 남자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군인아저씨. 나는 더욱 무슨 내용인지 보고 싶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사진이 넘겨 질수록 끔직한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을 알아볼수 없이 으스러진 머리, 팔다리가 뒤틀린 시체, 이빨과 턱과 머리가 분리덴체로 찢겨진 모습, 차마 볼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도대체 이게 뭔데 아저씨는 그리도 열심히 볼까? 차마 볼수 없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보았던 문구. "과연 저들은 어느나라 군인인가? 누가 저들이게 이나라 국민을 학살 하려고 시켰는가? 그들에게 술을 먹였는가?"
어느나라 군인이라니... 도대체 저런 일이 발생한 곳이 어느나라지? 북한인가? 중국인가?
당시 늘 반공교육이 이루어지던 때라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공산국가에서나 일어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심한 악몽을 꾸어야만 했다. 팔다리가 뒤틀리고 얼굴이 짖이겨진 귀신들이 밤새 나를 쫓아다니고 괴롭혔다.
몇일 뒤 그 일이 발생한 나라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었고,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란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어른들이 우리집으로 찾아왔고, 어머니는 우리를 방으로 들어가게 하시고는 그 어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책들을 가져가고 보시고는 하셨던 것이다.
나중에 서랍을 열어보니 버스아저씨가 보던 그 책이 놓여 있었고, 책의 제목은 "5월 그날이 다시오면" 이라고 쓰여 있었다. 책 여는 말에는 광주교구 신부님이 518의 참상을 알리기위해 조심스레 이책을 만든다고 쓰여 있었다. 왜 조심스러웠을까? 당시 내나이 9살이 1983년도였고, 전두환이 대통령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두환은 1980년 5월에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대통령이 된 자였다. 바로 그 참상을 알리는 책이 었던것이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 밖에.
몇일뒤 성당 앞마당에는 518참상을 알리는 사진이며 글들이 게시판이 붙기 시작했다. 당시 성당을 다니던 대학생 형, 누나들이 신부님과 함께 시작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은 얼마 가지 못했고, 이런저런 압력을 받았던 모양이다.
9살때 처음 접한 518광주민중항쟁과 당시의 참상을 이야기한 책 "5월 그날이 다시오면". 광주항쟁을 제대로 알게되고, 그 책을 제대로 보기까지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9살 어린나이에 그 책은 보기가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내각 13살이 되던 6학년때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 청문회가 제대로 될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1992년 518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연극이었을까? 구속된지 1년 반만에 다시 석방된다. 수많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왜 죽여야하는지 이유도 모른체 자기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쏴야 했던 당시 병역을 지던 이땅의 젊은이들. 지금도 괴로워하고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당시 책임자들. 그들이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보수단체는 518이 빨갱이들의 폭동이라 부른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비적떼라고 떠벌였던 친일파들 처럼.
사과도 반성도 없는 가해자. 그들을 용서하고 과거를 잊으라고 강요당하는 피해자.
9살 어린나이에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아니라고 알게해준 나라.
앞으로도 계속 이나라가 이렇게 가야만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잊어서도 안되고 과거의 청산은 확실히 해야한다.
9살에 내 나이 또래에 광주에서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사진한장을 들고 있는 사진속 아이가 겪은 일들이, 이땅 대한민국에서는 더이상 벌어지지 않게 하기위해...
518 - 정태춘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날에 아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 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위에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에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같은 주검과 훈장
너희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 까지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