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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과 관봉권 청문회

by 새벽별419 202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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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아이히만 재판과 악의 평범성, 그리고 검찰수사관의 항변

 

▲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심사소위에서 열린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서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현금 1억 6500만 원 중 관봉권 띠지 훼손·분실된 사안과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 ⓒ 유성호

어제 우연히 TV CHOSUN 뉴스를 보다 문득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개념 정리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떠 올랐다.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 선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인류사의 거대한 비극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일을 총괄하며 수많은 죽음을 가능케 한 핵심 행정가였다. 그러나 법정에서 그의 항변은 의외로 평범했다. 그는 자신을 거대한 악의 설계자가 아니라, 지시를 수행한 단순한 관리로 규정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개념화 했다. 아이히만은 특별히 잔혹하거나 악마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사유(無思惟), 즉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조직의 명령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는 평범함 속에서 거대한 악이 탄생했다고 보았다.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나온 검찰 수사관의 태도와 이를 문제 삼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한 8년 차 수사관은 검찰내부망에 "말단 공무원으로서 시키는 대로 일을 했는데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청문회를 보며 울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식을 발 빠르게 TV CHOSUN에서 보도를 한 것이다.

'관봉권 띠지'는 돈 뭉치가 "언제, 누가, 어떤 부서에서, 어떤 검수 절차를 거쳤는지" 등을 기록하는 표식(표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추적성과 증거 보존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그 띠지가 없어졌다. 당연히 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고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당연한 행위이다. 이 날 청문회에 출석한 수사관은 "저는 기계적으로 일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진실 외면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증거물의 보존은 수사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나 그 과실이 드러났을 때, 그는 문제의 본질보다 "윗선의 지시"와 "그에 따른 기계적 복종"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피해자 위치에 놓았다. 8년 차 수사관의 항변이나 청문회에 출석한 수사관의 답변을 보면서 아이히만의 재판이 오버랩 된 것은 과도한 것일까?

물론 아이히만의 범죄와 국내 청문회의 사건은 역사적 무게가 다르다. 그러나 두 사례가 공유하는 본질이 있다. 바로 복종을 방패로 삼아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다. 명령에 따른 행동은 때로 면책의 근거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 범죄와 부정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 결과, 책임은 위와 아래 사이에서 증발하고, 진실은 흐려진다.

아이히만 재판은 우리에게 묻는다. "명령을 따랐으니 나는 무죄인가?" 관봉권 청문회는 다시 되묻는다. "윗선의 지시에 기계적으로 복종한다고 개인의 책임은 사라지는가?" 역사는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명령에 따른 복종은 결코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조직적 범죄와 부정의 토대가 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Ohmynews)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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