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장기불황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각 나라의 최대 경제 이슈는 단연 고용안정 대책이다. 이미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경기침체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을 경우(그림1 Scenario 3 실업률 참고), 2007년 대비 최대 5,00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세계적으로 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형편이다(ILO, "Global Employment Trends", 2009.1). 지구상에 우리나라 국민 수 이상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용사정 역시 이런 추세를 피해갈 수 없다. 2009년 1월 일찌감치 취업자 수가 10만 명 이상 줄어들어 ‘마이너스 고용시대’로 추락하였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그 폭이 더 커질 것이다. 그 동안 4대강 정비 사업으로 5년 간 90만 명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식의 낙관적 전망을 고집해왔던 정부조차도 -2퍼센트 성장에 -20만 명 취업자를 예측했을 정도다.
그러나 올해 IMF가 전망한 한국경제 성장률 -4퍼센트를 가정하면, 최소 -30만 명 수준으로 고용이 추락할 것이 확실하며, 그 이상 성장률 추락마저 배제할 수 없는 마당에 취업자 수 감소는 -4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1월 현재 공식 실업자 수가 84만 명이니 실업자 120만 명 이상 추락은 거의 확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고용사정 더 악화시켜
이 같은 세계적인 고용대란을 앞두고 각국 정부는 고용보호와 유지를 위한 각종 대책과 추가 일자리 창출대책을 세우느라 부심하고 있다. 신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30일, 부시 행정부에서 약화된 노동조합을 강화하기 위해 우선 연방정부 계약업체들을 상대로 노조탄압 금지, 단체교섭권 공지, 계약업체 교체시 고용승계 등을 명시한 3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경향신문> 2009.2.2).
노조를 탄압하는 계약업체들에 정부 예산이 유입되는 것을 금하고, 연방정부 계약업체로 하여금 직원들에게 노동관계법에 따른 단체교섭권 공지를 의무화하도록 하며, 연방정부의 계약업체가 바뀔 경우 고용승계를 의무화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조차도 노동유연화를 강화하기 보다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고용유지를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 정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임금 삭감정책을 고용정책이라고 내놓으며 임금을 삭감한 기업에 세제지원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많은 비정규직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행 최저임금법이 기업에게 부담이 된다면서 최저임금을 낮추는 시도마저 강행 하려고 한다.
이들 정책이 고용유지와 확대에 기여할지 의문시 되는 것은 물론, 경제 불황을 핑계로 기업들이 자행할 무분별한 노동자 피해 전가를 정부가 앞장서 조장하고 여기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주는 꼴이다. 반면 고용과 임금 유지를 위해 부단히 애쓰는 선의의 중소기업들에는 찬물을 끼얹고 있다.
단순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넘어 조속한 경기회복 차원에서 보더라도, 최저임금 삭감이나 비정규직 기간 연장은 내수기반을 약화시켜 경기회복을 지연시키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을 유지하는 정책은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를 확대하는 효과’적인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지적이 이런 점에서 타당성이 높다(전병유, “최근의 고용위기와 고용정책 방향 모색”, 한국노동연구원, 2009.2).
정부가 추진하려는 비정규직 기간 제한 완화와는 정반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용유지 지원금을 비정규직 해고방지에 우선 적용’하는 정책이 지금 당장 도입되어야 한다.
고용보험기금 적자,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까
마이너스 고용시대로 진입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이 신청하는 실업급여액은 뛰고 있고,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들이 신청하는 고용유지 지원금 역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노동부 발표에 의하면 실업급여 신청자가 2008년 1월 9만 4,000명에서 1년 뒤인 2009년 1월에는 12만 7,000명으로 늘어났다. 경기침체에 따라 비자발적 실업자가 늘고 실업급여 신청률 역시 예년의 50퍼센트 수준에서 84퍼센트 수준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업들의 고용유지 지원금 신청 건수가 2008년 1월 418건에서 2009년 1월에는 무려 3,874건으로 폭증해, 9배 이상 증가했다. 해당 기업에서 지원금을 받을 노동자들도 같은 기간 4,000명에서 3만 2,000명으로 늘었다(노동부 보도자료, “1월 실업급여 신규신청자 및 지급액 급증”, 2009.2).
문제는 고용불안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통상 고용사정 악화가 경기 침체보다 3~6개월 정도 늦게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심각한 고용불안은 올해 중,후반기로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노동부가 구직자에게 지급하는 실업급여나 고용유지를 위해 기업에 지급하는 고용유지 지원금은 실상 국가 재정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와 고용주가 분담하는 ‘고용보험 기금’을 노동부가 임의로 집행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고용보험기금은 2006년 기준으로 매년 연단위로 적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도 약 8,000억 원 정도 적자 손실이 잠정 집계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아직 적립된 고용보험 기금이 약 7조 9,000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향후 2년 간 지금 상황(적자)이 지속되어도 고용보험기금이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머니투데이> 이영희 노동부 장관 기자간담회 주장, 2008.2.13).
노동부는 이미 지난해 12월 24일 주요업무 계획을 보고하면서 총 5조 4,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고용안정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노동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노사관계 대책”, 2008.12). 해당 금액의 대부분이 노동부 자체 예산이라기보다는 노동부 재원과 관계없는 고용보험기금임은 물론이다. 노동부는 여기서 고용유지 지원금 583억 원을 포함해 실업급여를 위한 재원 3조 3,000억 원을 확보하겠다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미 1월 한 달에만 고용유지 지원금이 92억 원이 지급되었고, 실업급여 역시 계속 늘어만 간다. 정부가 당초 성장 전망치 3퍼센트, 고용전망치 10만 명을 기준으로 고용보험기금 약 1조 적자를 예상했는데, 이런 상태라면 실제로는 그 두 배를 훨씬 넘는 적자가 예상된다.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상황이 아니다.
반쪽짜리 고용보험제 말고, 80퍼센트 노동자가 받을 고용보험 필요
그러나 문제는 정작 다른 데 있다. 노동부가 자기 재원도 아니고 노동자와 고용주가 적립해왔던 고용보험기금을 마치 자신의 자금인 것처럼 생색을 내며 고용안정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나마 혜택을 볼 수 있는 대상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우선 현재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고용보험에 가입된 약 940만 노동자이다(2008년 12월 상시근로자 기준으로 938만 5,000명. 한국고용정보원, “2008년 12월 고용보험 통계 현황”, 2009.1). 물론 처음 실시되었던 1995년 400만 명 수준에 비하면 14년 동안 두 배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완만하기 그지없다. 현재 통계청에서 발표한 노동자 수가 약 1,6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노동자의 6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취업자 인구는 실업자까지 포함하면 약 2,4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취업준비생(60만 명)과 ‘그냥 쉬었음’인구(170만 명)까지를 합치면 2,600만 명을 넘는다고 볼 수 있다. 고용보험 이외에 고용 관련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사실상 고용보험의 혜택을 입어야할 인구가 줄잡아 2,600만 명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현행 고용보험제도는 고용불안의 위험범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잠재적 대상자인 2,600만 명의 36퍼센트만이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반쪽짜리 고용보험도 안 되는 셈이다. 일용노동자를 포함한 수백만 노동자들, 자영업자들, 그리고 취업준비생 등은 아예 실업급여나 고용유지 지원금 대상에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확인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고용보험 이외에 이렇다 할 고용안정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용보험이라는 제한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그나마 1/3에 불과하다는 것이 냉정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 정도 수준의 고용안정 장치를 가지고서 앞으로 다가올 외환위기 이상의 고용대란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1/3이 아니라 80퍼센트 이상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현재의 고용보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준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실시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국가적 수준에서 통상 알려진 4대 보험제도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그리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그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거의 전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발전해 왔고, 나름대로 저소득층이 좀 더 수혜를 받을 수 있게 소득 재분배 효과를 늘리며 설계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용보험은 그렇지 않다. 고용에 이해관계를 가진 국민의 1/3 정도만이 고용보험이라는 사회적 장치 안에 들어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경기 불황이 향후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못지않게 고용안정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의 요구는 더욱 절박하게 커져갈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보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준하는 수준으로까지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확대시키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다. 우선 현재 임의가입방식으로 되어 있는 일용, 건설 노동자 등 노동자 적용 폭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또한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자영업인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나아가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청년 실업자들을 고용보험 적용 대상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 과제는 기금 재원마련이다. 특히 한계상황에 몰린 자영업인이나 취업을 아직 하지도 못한 청년 취업준비생에게 고용보험 납부를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용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취업 문제를 넘어서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적인 책임 영역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노동은 국민의 권리이며, 국가는 국민이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서 고용보험 기금에 출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고용보험기금을 확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금융기관들을 위한 채권안정 펀드나 은행자금확충펀드에는 10조, 20조의 자금을 투입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한 기금에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비정상적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임의가입 방식으로 자영업인 고용보험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식의 소극적 방식을 폐기하고 즉시 자영업인 대부분을 포괄하는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고, 최소 3년간 보험료 납입을 유예시켜야 한다(정부는 영세 자영업자 등에 대해 실업금여 임의가입을 올 하반기에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 노동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노사관계 대책”, 2008.12). 그 대신 해당 비용을 정부가 출연해야 한다. 또한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청년 취업준비생들을 위해서는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을 전액 충당해야 한다.
고용의 사회적 책임성을 감안해, 비교적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도 내부 고용확대를 하는 것이 어렵다면 대신 고용보험기금에 일정 금액을 출연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고용보험 기금 운용위원회를 설치해야
고용보험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정부의 고용보험기금 출연을 상설화하는 고용보험제도를 개혁한다면 당연히 기금운용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금액이 제때에 지급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노동부가 돈 한 푼 내지 않고 기금운용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정상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별도의 기금운용위원회를 설치해서 경제 불황으로 인한 실업대책과 고용유지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경제를 조기에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도 고용이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가 되어야 한다. 고용안정의 두 가지 축은 ▲ 기존의 고용을 유지하고 실업 대책을 세우는 것이며, ▲ 새로운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고용유지 지원과 실업급여 지급 등은 당장 신속히 실행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이 문제 해결의 가장 유력한 정책적 수단이 바로 고용보험이다.
최저임금 삭감, 통상임금 삭감,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같은 고용악화 정책을 버젓이 고용안정대책이라고 내놓을 때가 아니다. 1년 이상 장기화될 고용불안 국면 앞에서 1년 미만짜리 청년 인턴제로 연말에 고용 상황을 더 악화시킬 국면도 아니다. 적자행진을 하고 있는 고용보험기금을 쓰는 것인데도 마치 정부가 엄청난 재정을 고용안정에 투입하고 있는 것처럼 과시할 상황도 아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시급히 도입해서 고용대란을 막을 한 축을 서둘러 준비하자. 그리고 토목 건설 같은 백색 시멘트 뉴딜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분야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준비하여 또 다른 방어 축을 병행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