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6. 15:57ㆍ세상은
‘임금삭감’보다 ‘배당삭감’이 더 급하다 | |
정부와 대기업, 배당삭감 협약에 나서야 | |
2009-02-25 ㅣ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 |
2월 25일 오전, 전경련 회의에서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 요지는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퍼센트까지 삭감하기로 하고, 기존 직원의 임금조정(삭감)을 통해 만들어진 자금으로 신규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해 배당성향 20.7퍼센트 보다는 다소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제이미 다이먼 CEO의 말처럼 지금과 같은 예외적인 비상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매우 높은 수치다. 하다못해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 그렇다. 알려진 바로는 삼성전자가 약 7,000억 원, SK텔레콤이 6,000억 원, POSCO가 5,700억 원 수준의 배당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 1년 동안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에 주가 대비 배당금액을 뜻하는 배당률은 약 1.8퍼센트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보다 오히려 0.3퍼센트 가량 올라갔다. 주가하락 수준보다는 배당 감소 수준이 대단히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금융기업과 대기업들은 이미 2007년 말부터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지난 4분기부터 실적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의 기업실적이 미국에 비해 한결 낫다고 무분별하게 배당금으로 이익을 탕진할 때가 아니다. 이미 경영 악화가 가시화된 중소기업은 물론 재무건전성이 높다고 알려진 대기업들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적악화가 예상된다. 전경련의 2월 24일 발표에 의하면 국내 제일의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20대 그룹의 80퍼센트가 올해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조사되었다. 나아질 것으로 보는 기업은 1개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임금 삭감으로 발 빠르게 경기불황에 대처하는 모습과 높은 배당을 결정하는 모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순이익의 절반 가까운 금액을 배당으로 돌리고, 다시 그 절반을 외국인 배당으로 했던 은행들이 수익을 배당으로 탕진하다가 지난해와 같은 금융위기를 맞아 자본여력 부족으로 결국 정부지원을 받고, 후순위채권을 발행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노정시킨 바 있다. 이미 정부와 한국은행은 먼저 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본확충을 지원했으며, 다시 10조 원 이상을 투입하여 3월부터 은행들은 자본확충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런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웠던지, 지난해 9월 KB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킨 국민은행이 배당을 중지한 것을 비롯해서 다수 은행들이 배당 삭감을 해야 했다. 신한은행이 4,065억 원에서 100억 원, 우리은행이 2,003억 원에서 25억 원, 외환은행이 4,514억 원에서 806억 원, 부산은행이 836억 원에서 300억 원, 대구은행이 793억 원에서 300억 원으로 작년 대비 배당총액을 삭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나은행 역시 올해 209억 원 정도의 배당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당국에서 자기자본 확충을 권고하고 있어 배당을 실시하기 어렵다"며 "작년에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지주회사에서 증자까지 받았는데 배당을 실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한 은행관계자의 발언에서 배당 삭감 처지의 일단이 드러난다(<아시아 투데이> 2009.2.25). 그러나 은행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그 전해에 비해서 절반으로 줄었고(47.4퍼센트 감소한 약 8조 원 순이익, ‘금융감독원 브리핑자료’), 2008년까지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고배당을 유지해온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외환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50퍼센트를 훨씬 넘는 것을 감안하면 은행의 배당은 곧 달러 유출과 연계되어 가뜩이나 불안한 환율 불안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와 대기업은 ‘배당 삭감 협약’에 나서라 외환위기 이후 한국기업들은 주주자본주의 경영방식으로 대전환을 시도하면서 주주 중시 경영에 매달리고 대신에 고용을 체계적으로 줄여왔다. 그 대표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가 매년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이를 설비투자로 돌리거나 고용확대에 투입하지 않고 배당금 잔치를 벌려 소진했다. 그 결과 장기적인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극히 취약하게 만들었다. 경제위기의 초입 국면이었던 지난해 2008년만 하더라도 단 1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주요 상장기업들은 무려 10조 6,000억 원에 해당하는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그 가운데 절반인 5조 원은 외국인에게 돌아갔다. 현금배당을 1억 원 이상 받은 사람이 153명이었고, 정몽준 600억 원, 정몽구 300억 원, 이건희 210억 원 등 100억 원 이상을 받은 재벌 총수들도 무려 8명이나 되었다(새사연, “한국주주자본주의, 배당금 잔치가 시작되다”, 2008.3). 그러더니 막상 경제위기가 닥치자 대응준비체제를 갖추진 못한 주요 기업들은 배당 삭감이나 중지 결정을 먼저 내리기 보다는 앞다퉈 임금 삭감을 들고 나오게 된 것이다. 이제 이런 행태에 근본적인 수술을 가해야 한다. 지난해 그나마 벌어들인 수익을 앞으로 예상되는 급격한 실적 악화에 대비해 자본금 확충이나 고용유지, 확대에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이며,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위해서도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땀 흘려 일해서 받아야 할 월급은 깎고, 돈 굴려서(투자) 벌어들이는 배당금은 보장해준다면 어느 누가 노동을 하려고 할 것이며 어느 세월에 고생해서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절이 올 것인가. 대기업 총수들도 본인들에게 차려질 배당금을 출자전환하든지 고용에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야 하고, 특히 외국인 지분이 많은 기업들은 현재 환율불안이 극심하고 외환보유고가 비상상태라는 점을 감안해서 배당 삭감 내지는 중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임금 삭감을 거론하기 전에 정부와 재계, 그리고 금융계는 이런 취지에서 ‘배당 중지 협약’을 맺고 배당 중지 캠페인을 벌여야 마땅하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은행들은 수익추구와 과잉 배당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이름아래 ‘글로벌 밀착형 은행’으로, 국내 자본 참여라는 미명아래 ‘대기업 밀착형’으로 변신하려 할 것이 아니라 다수 국민에게 제대로 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민 밀착형’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로 대 충격을 받은바 있다.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다니던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상황이 되고, 자금중개기능을 하는 ‘기관’인줄 알았던 은행들이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익성만을 좇는 ‘회사’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익이 나면 고용을 늘리고 투자를 하던 상식이 뒤바뀌어, 이익을 매년 배당금으로 털어버리게 되었다. 이제 다시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대 충격이 오고 있다.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