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4. 12:35ㆍ세상은
[반박논평]
서태열 고려대 입학처장에 답한다
권영길 의원실
고대가 장기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서태열 입학처장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려대 입시부정 의혹에 대해 <위클리 조선>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17/2009021700892.html)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이 많지만, 일단 입장을 밝힌 것을 환영한다.
우선, 조목 조목 반박하기에 앞서 한말씀 드리겠다.
“내신 90%, 비교과 10%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내신 중심으로 선발하겠다고 밝힌 것 아닌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 이번 전형에서 고려대가 내신성적 중심으로 선발하려고 하는구나’라고 해석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상식이 깨졌고, 고려대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서태열 처장이 한말 역시 상식 밖의 변명으로 들린다.
서태열 입학처장이 밝힌 해명은 크게 세가지 이다.
일반고와 외고, 합격률이 비슷하다고? 두 집단의 질적 차이 무시했다.
우선, 통계치이다. 그는 수시2-2일반전형 1단계에서 일반고 학생의 합격률이 53%인데, 외고 학생의 합격률이 58%이므로 별차이가 없다”라며 의원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는 의도적인 왜곡이다. 알다시피 이 문제의 핵심은 일반고 학생 1등급이 떨어진 전형에 외고는 5, 6등급 학생도 대거 합격했다는 것이다. 내신 90%를 반영하는 전형에서 말이다. 일반고와 외고 두 집단 모두 ‘지원자 대비 합격률’이 각각 53%, 58%라는 서 처장의 분석은 본 의원도 확인한 바다. 그러나 서 총장은 두 집단 구성원들의 질적 차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일반고 지원자들의 경우 당연하게도 내신 1, 2등급 이내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탈락한 학생들 수준도 1, 2등급이다. 반면 외고는 6, 7등급 수준의 학생까지 고르게 지원했다. 그런데도 외고생의 합격률이 더 높은 것이다. 내신 90%를 반영했다면 외고생이 대거 탈락했어야 하지 않나?
일부 외고의 합격률이 90%에 육박한다는 의원실의 주장에 대해 서 총장은 합격률이 78%인 일반고도 있다고 반박했다. 마찬가지로 의도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본 의원이 예로 든 외고의 경우 212명 지원에 190명이 붙었다. 졸업정원 443명의 무려 43%이다. 일등부터 순차적으로 지원한 것도 아닐 것이므로 합격자 중에는 최소 6등급까지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고려대가 예로 든 일반고의 경우 매우 적은 숫자의 학생이 지원했을 것으로 보인다. 쉬운 예로 1등급 5명 지원해 4명이 붙으면 합격률 80%이다. 단지 78%라는 수치로는 반박이 되지 않는다. 통계 수치를 밝히려면 가공되지 않은 정확한 수치를 밝혀라.
비교과 부분이 당락의 열쇠라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서 처장은 외고의 내신등급 낮은 학생은 붙고, 내신등급 높은 일반고 학생은 떨어진 이유에 대해 “비교과 부분”이 당락의 열쇠였다고 해명했다.
의원실은 이 전형에 응시한 일반고, 외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상당수 확보해, 그 중 한 사례를 2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회의장에서 공개했다. 내신 1.5등급 수준에 지각, 조퇴 한번 없고, 교내 우수상 38개, 영어소통능력인증 우수 평가, 논술능력평가에서 동상을 받은 학생과, 내신 5.8등급에 결석 5번, 수상내역은 교내 영어경시대회 장려상, 교내 백일장 2회 입상, 공로상을 받은 외고 학생의 성적표였다. 봉사활동 시간, 학생회 경력 등 개별 사항을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일반고 학생이 우수했다. 둘 다 동일한 학과를 지원했다. 결과는? 일반고 학생을 떨어지고, 외고생은 붙었다.
일반적으로 비교과는 내신과 함께 가는 경향이 있다. 즉, 내신 성적이 좋을수록 비교과도 우수하다. 수상실적이 좋을뿐더러, 출결이나 자격증 보유 상황도 좋다. 권영길 의원실은 외고 합격생 중 내신 5, 6등급 수준인 생활기록부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엄청난 내신 차이를 뒤집을 만한 비교과를 가진 경우는 솔직히 보기 힘들었다. 비교과가 당락을 결정했다고? 안타깝게도 서 처장은 거짓말을 한 듯 하다.
또한 서 처장는 “경쟁이 치열한 상위권 학과의 경우 교과성적이 높아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고려대 같은 명문대라면 교과성적이 높은 학생도 충분히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내신 위주의 전형에서 6등급 이하의 학생이 붙을 수는 없다. 그것도 고려대처럼 1, 2등급 학생들이 수두룩하게 지원하는 곳에서 말이다. 서 처장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라.
알파값, 케이값 공개할 수 있다고? 제발 빨리 해라.
서 처장은 상수값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 “그건 잘되는 음식점에 가서 레시피 내놓으라는 것과 다름없고, 대학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란 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교협에서 달라고 하며 다 줄거다”라고 공개 의사를 밝혔다.
우선 환영한다. 모든 상수값을 공개하라. 나아가 비교과에서도 어떤 부분을 어떻게 채점했는지 밝혀라. 제시한 기준에 맞춰 입수한 생활기록부를 이용해 직접 채점해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치면 이런 황당한 경우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모진 언론의 포화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던 고려대가 대관절 무슨 자신감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나, 이왕에 공개할 거라면 재차 요청하지 않도록 투명하게 하기 바란다. 참고로 연세대의 입학전형을 분석한 결과 내신산출공식이 고려대에 비해 훨씬 상세해 이해하기 편했다. 아마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연세대도 고려대만큼 ‘맛있는 음식점’ 아닌가. 맛있는 음식점은 레시피 공개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당당히 조사에 임하라
이 사건으로 피해본 학생들을 생각해보라.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그동안 밤잠 설쳐가며 관리한 내신 성적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차라리 고등학교를 좋은 데로 갔어야 하는데…’라는 한숨과 설움이 학생들이 보인 공통적인 반응이다. ‘차별 앞에 노력은 아무 소용없구나’라는 좌절감이 이들을 짓눌렀다. 충격으로 수능을 망친 학생도 있다.
학교 교육은 생각해본 적 있는가? 고교등급제가 확산되면 내신은 쓸모 없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동기가 사라지게 된다. 좋은 고교에 진학하기 위한 초중등 입시가 부활하게 되고,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온갖 사교육을 받아가며 입시 지옥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악몽이라면 이미 과거에 겪은 적이 있지 않은가? 대학 진학률 83%인 나라에서 명문 대학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를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