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7. 17:28ㆍ세상은
국회 선거법 개정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과 정의당이 치열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 석패율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석패율제를 문제 삼으면서, “석패율제는 어려운 지역에서 정치하는 분들이 회생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였는데, 요즘 얘기되는 건 중진들 재선 보장용으로 악용돼 (도입 취지가) 퇴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라는 발언을 하여, 선거법 개정 협상에 임하고 있는 정당들이 발끈하는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도 단연 정의당에서 불쾌감을 보였고, 심상정 대표는 페이스북에 “정의당의 유일한 중진인 저는 어떤 경우에도 석패율제로 구제될 생각이 전혀 없다” 글을 올렸습니다.
석패율제가 뭐길래?
여기서 먼저 석패율제도가 무엇인지 잠깐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석패율제는 간단하게 말해서 일종의 '낙선자 구제 제도'로 지역구에서 아쉽게 낙선한 후보를 구제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낙선 후보 중 득표율이 높은 후보 순서대로 비례대표 명부에 올려서 구제하는 것이죠. 당선자와 근소한 표 차이로 아깝게 떨어진 후보일수록 당선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그 동안 일부 시민사회 쪽에서는 정치 신인과 소수자에게 배정된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출마자에게 배분해 비례대표 취지를 상실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번 이해찬 대표의 발언처럼 실제 득표율 차이가 정치 신인보다는 중진인 경우가 더 근소하기 때문에 중진 구제용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제기 된 것 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나 시민사회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석패율제는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에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서 각 권역에 2명 이내 석패율로 구제하도록 하였는데, 이해찬 대표의 우려처럼 ‘중진 재선 보장용’으로 악용될 여지를 없애기 위한 ‘봉쇄 조항’도 함께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특정 권역에서 한 정당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30%를 넘으면, 그 권역에서 해당 정당은 석패율 당선자를 낼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즉 이말은 A정당이 서울에서 지역구 당선자의 30% 이상을 내면 석패율로 권역별 비례대표를 당선시킬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득표율이 취약한 지역에서 아깝게 낙마한 지역구 후보를 석패율제로 구제할 수 있어서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석패율제의 취지가 그대로 살아있게 되는 것이었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리고 사실 그 동안 석패율제를 주장한 것은 민주당이었습니다. 오히려 정의당은 석패율제가 없었습니다. 지난 20대 총선공약을 살펴보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주요 공약이었습니다.(민주당 20대 총선공약 참조) 또한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2017년 석패율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입니다. 반면 정의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도입이 주요 핵심 공약이었습니다.(정의당 20대 총선 공약 참조) 어찌보면 지금 상황은 20대 총선 당시와는 전혀 상반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갑툭튀 석패율제
그렇다면 왜 두 민주당과 정의당은 왜 자신들의 공약과는 다르게 행동 하고있는 걸까요? 지난 4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 될 때만 해도 석패율제는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주요한 것은 비례대표 의석수와 연동율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는 늘려서 지역구 225에 비례 75석으로 정하고, 연동율을 50% 적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바로 지역구 의석수!
기존 257석의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니 현재 국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질 수도 있고, 그렇다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질 수 있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지역구 250에 비례 50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비례의석수가 줄어든 만큼 준영동형을 적용하게 되면 민주당의 비례의석수는 줄어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다시 비례의석 중 30석에 대해서만 준연동형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애당초 원안보다 비례대표 숫자가 줄어든 만큼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구조에서 석패율제를 적용한들 단순 '낙선자 구제용'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 더해 석패율제 도입으로 인한 정의당 후보들의 완주입니다. 정의당 후보가 석패율제를 통한 당선을 염두하고 선거를 완주할 경우 자유한국당 후보가 유리해 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지역구 250에 비례 50, 그리고 비례 의석중 30석에 대해서만 준연동형 적용, 석패율제 폐지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정의당은 줄곧 선관위 안대로 지역구와 비례의석수를 2:1로 완전연동형을 제시해 왔었고 결국 최종 합의된 안은 지역구 225, 비례75, 준연동형으로 된것이지요. 하지만 합의안에서 지역구 250석, 비례대표 50석으로 비례대표 숫자가 줄어들었고, 여기에 30석에만 준연동형을 적용하는 안으로 후퇴한 상황에서 정의당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석패율이 중요한게 아니라 연동형이 핵심
결국 '4+1' 공조가 불발되면서, 17일 21대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 등록 시작이 되었음에도 선거법 개정은 한발 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상황에서 정의당은 민주당에 마지막 협상을 제시했고, 민주당은 정의당에 ‘이중등록제’를 새롭게 제안했습니다. 이중등록제는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출마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민주당은 이중등록제가 석패율보다 경합지역 접전 사례를 줄일 수 있어 부담이 적다고 생각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글쎄요... 정의당 입장에서는 석패율보다 이중등록제가 지역구에 더 많은 후보가 출마하고 완주할 것 같은데 말이죠.
아무튼 논란의 중심은 석패율이지만 그 논란의 핵심은 사실 연동형비례대표제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선거제도로는 1인 소선거구제도이기 때문에 상대의 득표율이 49%에 달한다 해도 51%를 가지기만 하면 승리하게 되므로 나머지 49%가 사표가 되어 49%만큼의 민의는 배제되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시민사회쪽이나 군소정당에서 주장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득표율을 기반으로 의석을 배분해 사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례대표제는 사표가 없기 때문에 분명히 투표율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장기적으로는 지역구와 비례의석을 150석씩 1:1 배분을 고민했지만 현실적인 여건(이번에도 지역구 줄어드는 것을 반발한 의원)을 고려하여 지역구 200석, 비례 100석의 권역별 연동형을 제안한 것입니다.
실제 지난 20대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 득표율에 따른 의석배분을 적용했을 때 실제 의석배분과 상당한 차이가 난걸 볼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법 개정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패스트트랙 절차에서의 정치적 합의의 핵심 내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완전 100% 연동률을 통해 사표를 방지해야겠지만 그나마 50% 연동률이 적용되서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증진켜 사표를 방지하여 국민의 실질적인 참정권을 확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50%연동률에서 더 후퇴된 선거제도 개정안이 마련된다면 이를 개혁안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