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9. 02:38ㆍ리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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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은 1976년 파리에서 있었던 와인 시음회에서 발생한 사건을 가리킨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앞지른 일대 혁명이었던 사건. 그것이 바로 <파리의 심판>이다.
일전에 위드블로그를 통해 접한 <와인 정치학>에 이어 두번째로 보게된 와인 관련 책. <와인 정칙학>을 읽을 때보다는 <파리의 심판>은 훨씬 수월했다. 일단 와인과 관련된 용어 자체도 많이 익숙해 졌고, 이야기 자체가 <와인 정치학>보다는 딱딱하지 않으며 전개과정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훨신 수월했던것 같다.
<파리의 심판>은 저널리스트이자 기업가인 조지 M. 태버가 21년간 <Time>지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1976년 파리 시음회에 단독으로 보도하게 된 것이며 작가 조지 M. 태버가 그를 바탕으로 파리 시음회까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와인의 세계를 지배한 프랑스
프랑스 와인은 최고가 되기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자신들의 와인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엄격한 규정과 등급을 매겼고, 재배지의 포도의 맛이 와인을 결정한다고 믿는 만큼 그 품질을 최상으로 끌어 올렸다. 원산지 표시 등급은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원산지 표시 등급은 나중에는 프랑스 와인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규정과 등급에 얽매여 보다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여러가지 시도를 하지 못하게 만들에 되었던 것이다.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보다 엄격하고, 보다 세밀하게 와인을 만들면서 최고의 프랑스 와인은 최고가 되었지만 더이상의 도전이 없었던 것일까? 이후 프랑스 와인은 최고의 자리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에게 내주게 된다. 모든 것은 최고 절정에 다다르면 하락하기 마련이다. 와인의 세계 역시 그랬던 것이다.
혁명의 시작, 꿈은 이루어 지고
캘리포니아 와인이 생산되는 과정은 프랑스 와인의 과정이 그러했듯 굉장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와인 양조장이 생겼다 사라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와인을 만들었을 때는 아무런 기술도 재배지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수행 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수행 착오와 몰락했다가 다시 일어나는 와인 양조장 처럼 캘리포니아 와인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무더지고 또 도전하게된다.
금주령이 떨어졌을 때 캘리포니아 와인은 저가 와인으로 전락하고 수많은 와인 양조장이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이런 때에도 가정에서 혹은 교회에서 쓰기 위한 와인을 만들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간다. 금주령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금 와인 양조장이 번성해가기 시작했다. 질 좋은 와인을 보다 많이 팔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주령은 미국인들의 입맛을 바꿔버렸다. 고가의 질좋고 맛 좋은 와인 보다는 저가의 와인의 소비가 더 많았던 것이다. 또다시 와인 양조장의 몰락이 이어졌다. 이처럼 몰락과 번성을 반복 할때 마다 강철이 다져지듯 캘리포니아 와인은 한단계 한다계씩 발전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과 창조. 그것이 바로 캘리포니아 와인의 정신이었다. 로버트 몬다비, 위니아스키, 마이크 글기치, 짐 배럿 등 수 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창조가 이룩해 온것이 바로 캘리포니아 와인이다. 스스로 프랑스 와인을 목표삼아 와인의 질을 높였고, 그것은 결국 프랑스 와인을 앞지그레 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 했던가. 캘리포니아 와인은 바로 프랑스 와인의 맛을 따라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모방은 언제나 2인자밖에 될수 없다. 그것을 뛰어넘어야만 진정한 1인자가 되는것.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 벽을 넘었고, 1976년 파리 시음회에서 프랑스 와인을 앞지르는 일대 혁명을 일으킨다. 이후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파리의 심판>이라고 일컬어 지는 1976년 프랑스 파리 와인 시음회. 혁명은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전과 창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