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심하면 국민이 일어섭니다.
폭력경찰의 원천봉쇄 속에서 제8차 협상이 끝남과 동시에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2007년 3월 12일 15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차가운 돌바닥에서 노천노숙 단식농성투쟁에 돌입합니다. 단식한다고 노무현정권이 갑자기 귀 기울일 리 없고 부시야 더더욱 그럴 리 없건만 우리는 범국민운동본부 대표자회의 결의대로 단식농성을 시작합니다. 낡은 투쟁 방법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철석같이 믿는 데가 있기에 결행하는 일입니다.
동지들. 협상의 구체적 사안은 동지들끼리 토론하시고 이 자리에서는 다음 몇 가지만 확인합시다. ‘세계최고 세계최대 시장’을 선점한다는 거짓 명분으로 국민을 속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4대 선결조건을 자발적(?)으로 미국에 헌납하면서 한미FTA를 구걸한 1년 전, 바로 그 때 부터 우리의 주권은 벌써 무너졌고 국익의 ‘마지노선’은 이미 뚫렸던 것입니다. 마지노선이란 프랑스가 대독전선에 세운 국가수호의 최후방벽으로서 물러설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선인데, 우리정부가 말하는 마지노선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이번 협상의 마지노선은 다음 협상에서 금이 가고 다음 협상의 마지노선은 그 다음 협상에서 깨져나가, 이젠 형해조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세계최고 세계최대 시장’으로 진출한다며 장밋빛 미래를 장담하던 한미FTA는 그 많고 많은 마지노선을 모두 다 잃은 채 죽음의 검붉은 핏자국을 걸음마다 선명하게 찍으며 우리민중의 머리위로 시시각각 육박합니다. 이미 예측한대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아가리에, 자유경쟁이란 이름의 그 무차별 무제한 탐욕의 괴물 아가리에, 우리의 경제를 비롯하여 교육, 문화, 보건의료, 마침내 부동산과 미디어까지 모조리 쓸어 넣고 있습니다. 국민대중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이해 당사자들과도, 그 어떤 전문가들과도, 과학적 토론과 검증이나 그 어떤 의견수렴도 없이, 제도언론을 압박하고 회유하여 거짓을 유포하고, 왜곡과 날조로 제조한 광고를 쏟아 붓는 한편으로 국민의 민주적 의사표현은 경찰폭력으로 짓밟아, 괴물이 요구하는 대로 그 아가리에 쓸어 넣고 있습니다.
저들은 이제 ‘세계최고 세계최대 시장’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협상 타결만을 말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존재이유가 마치 「한미FTA체결」에 있는 것처럼 돌진하고 있습니다. 헌법까지 간단히 유린하여 모든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그 금지를 강제하기 위해 가공할 폭력을 휘두르며, 그 방패와 곤봉과 군화발의 든든한 보호벽 뒤에서 밀실 야합하는 저 경제저격수들, 미국인보다 더 미국에 충성하는 친미사대 관료들과 정치인들, 초국적 자본의 하청 동업자가 된 국내 거대자본, 이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저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있고 저들의 혈관에는 뉘 피가 흐르고 있습니까?
이남 땅의 절반에도 못 미치게 작은 나라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 협상 중단을 선포하고 불평등 협상을 걷어치웠습니다. 스위스의 농업을 건드리는 미국으로부터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크나 작으나 국가란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비춰본 우리의 모습은 너무 비참하고 원통합니다. 62년간 미국의 점령치하에서 군사, 정치, 경제적 지배와 간섭을 받았지만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우리는 경제규모 세계 11등 놀라운 성취를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그 모든 것이 이제 미국의 초국적 자본 아가리 앞에 있습니다.
한미FTA 협상에 의해 한국법률제도가 170개 바뀌는 반면 미국 법률 제도는 단 1개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웅변해 주듯 이제 한국 경제는 미국에 완전히 수직하부로 편입됩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한국이 미국의 일부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경제 합방에 의한 식민지는 지배와 수탈의 대상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한미 경제 합방은 미제국의 군사전략의 목적이자 수단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의한 분단과 군사점령의 바탕위에서 한미 경제 합방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그 경제 합방의 토대위에서 대규모 전쟁기지와 신속기동군의 침략기능이 뜻대로 작동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정교하고 섬세하게, 더욱 완벽하고 강력하게 점령정책이 집행 될 것입니다.
이제 미국의 품안에 푹 안긴 친미관료와 정치인, 거대자본들은 옛날 친일파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중의 시신위에 영화의 성을 쌓게 될 것입니다. 1백 년 전, 험난한 국제정세에서 아시아 최강인 일본 품에 안겨야 나라를 지키고 일본인과 동등한 권익을 누릴 수 있다며, 철딱서니 없는 쇄국주의자들이 나라의 앞길을 막는다며, 자주독립을 외치던 민중을 탄압하고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을 추진했던 을사오적이 오늘 다시 무서운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노예 아니고서야, 사람으로서의 삶을 버리지 않고서야 견딜 수 있습니까? 사람의 목숨이 붙어 있고서는 당하지 못할 일입니다.
동지들!
꿈에 그리는 평등·평화의 행복한 세상, 이를 담아낼 민중주체의 자주・민주정부 수립은 제국주의가 도막낸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절대 조건임을 확인합시다. 우리가 이루고자하는 이 모든 위업은 한미FTA를 결코 빗겨갈 수 없다는 엄혹한 사실을 직시합시다.
4․19혁명과 87년 민중대항쟁을 상기합시다. 대지에 스며있고 우리 핏속에 녹아있는 이 소중한 민중승리의 자산을 결코 놓지 맙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동지들이 결심하면 국민대중이 일어섭니다. 일어서는 민중, 투쟁하는 민중만이 승리합니다. 일어서는 민중을 조직하는 동지들을 철석같이 믿으면서 오늘도 단식농성장 땅바닥 위에서 꽃샘추위의 세찬 바람 너머로 연두 빛 새물 오르는 나뭇가지를 바라봅니다. 솟아오르는 새 생명을 바라봅니다.
2007년 3월 14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오종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