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는 너무 다른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피츠제럴드 단편집

2009. 3. 26. 17:09리뷰/책


블로그 리뷰어로 선정되어 사무실에 도착한게 지난 3월 13일이었다.
책을 처음 받아보자 마자 드는 생각은 '무지 두껍네 원작 소설이라더니만 굉장한 장편이었구나. 그 장편의 내용을 어찌 영화로 잘 담아 냈을까? 원작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펼친 순간 '아! 원작 소설이 장편이 아니라 여러개의 단편중 하나였구나!'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책 표지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원작 소설! 이라는 문구에 단연 그 내용만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책 리뷰를 신청한것인데 ㅋㅋ 아무래도 이런 생각은 나뿐만은 아닌것 같다.  아무렴 어떤가? 이유야 어찌 되었던 F.스콧 피트제럴드의 단편 소설들을 읽을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그것으로도 족하지 아니한가?

책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외에도 <젤라빈>, <낙타 엉덩이>, <도자기와 분홍>,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메이데이>, <치프사이드의 타르퀴니우스>, <오, 적갈색 머리카락 마녀!>, <행복의 잔해>, <Mr. 이키>, <산골 소녀, 제미나> 총 11편의 단편 소설들이 들어 었었다. 제 각기 작가 특유의 독설과 풍자 기괴함이 스며 들어 있는 내용들이다.

여기 블로그에 쓰는 내용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때 쓰도록 하겠다. 영화때문에 이책을 보았기때문에 영화와 원작의 내용을 쓰다보면 글이 길어지므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는 처음 주인공 벤자민의 기구한 운명의 시작에서 데이지란 어린 소녀를 만나 각자 서로의 시간이 다른 속에서(벤자민은 70세 노인, 데이지는 12살 소녀) 끝까지 사랑을 키워가고 지켜주고 함께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각자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키워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둘에 대한 사랑은 계속 서로의 마음속에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벤자민은 계속 젋어지고 데이지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둘이 나이가 비슷해 졌을때 그때서야 진정한 사랑을 서로 확인하는데 있다. 하지만 그 비슷한 시간은 둘이 또다시 헤어져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벤자민은 계속해서 어려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둘의 사랑은 식지 않았고, 마지막 벤자민은 갓난아이가 되어 70의 노인이 되어 있는 데이지의 품에서 포근하게 안겨 죽는다. 영화는 두사람의 살아가는 시간이 달랐지만 포근하면서 따뜻하게 둘의 사랑을 그려 나갔다.

원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하지만 원작은 시작 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영화는 어린 벤자민이 아이로 태어났지만 작은 몸집에 70세의 몸이어서 괴물같다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지만 원작에서는 말그대로 70세의 노인으로 태어난다.

70세의 노인 크기로 아이들 요람에 누워있으려니 몸이 맞지않아 무척이나 힘들어 하는것이 묘사가 된다. 또한 70의 나이라는 것은 생각도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영화는 겉 모습은 70이지만 생각과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은데 비해 원작은 70의 나이 그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점차 젋어지고 어려지면서 그만큼 철부지로 변한다.

원작에서 아버지와 벤자민의 첫 만남에서 벤자민이 묻는다 "자네가 내 아버진가?" 이 얼마나 괴기스럽고 우스운가?

영화는 벤자민과 데이지가 결혼하여 딸아이를 낳고 점차 젋어지는 자신을 보며 벤자민은 데이지 곁을 떠난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벤자민과 몽크리프(영화에서 데이지는 이 사람을 모델로 했겠다)와 결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아들까지 낳는다. 허나 운명의 장난은 둘의 사랑을 금방 시들게 만들어 버린다. 점점 젋어지는 벤자민을 몽크리프는 못마땅해 하고, 점점 나이가 들어 주름살이 생기는 몽크리프를 벤자민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벤자민은 영화와는 다르게 그 동안 자신이 늙어서(실제 나이와 다르게 늙어보여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젋어서(셀제 나이는 50이 넘었지만) 실행하며 인생을 즐겨 나간다. 대학을 다시들어가고, 고등하교를, 중학교를...

영화와 다른게 원작에서 또한 기억나는 대사는 바로 아들과의 대화이다. 오히려 벤자민이 아버지이면서 이미 상당히 나이가 젋어졌기에 아버지이기 보다는 아들처럼 아버지가 되어버린 아들에게 졸라댄다. 이에 아들은 아버지 벤자민에게 이야기한다. "집에 손님이 오면 절 삼촌이라고 부르세요...열 다섯살 짜리 애가 제 이름을 부르는 건 터무니 없잖아요. 어쩌면 계속 저를 삼촌이라고 부르는게 낫겠어요. 그럼 익숙해 질테니까"

영화에서 처럼 시간이 다르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감정은 볼수가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을 즐길 뿐이다. 결국 벤자민은 점점더 어려지고 유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유모를 가장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요람위에서 아기가되어 배고프면 울고 졸리면 자는 아기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도 영화와 원작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운명은, 신은 누구에게도 똑같이 공평하다는 것이다. 처음에 갓난아이로 태어난 이들은 노인의 삶까지 누릴수 있게 했다면 처음에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에게도 똑같이 물론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이 차이지만 남들이 누릴수 있는 인생을 똑 같이 주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받은 느낌은 굉장히 기괴하고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다. 또한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말 하고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책위에 쏟아낸 느낌이다. 곳 곳에서 거침없는 독설과 통력한 풍자, 또한 당대의 책이나 문학작품 혹은 고대의 작품에 대한 패러디는 작가가 살았을 당시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경박하고 시니컬하다가 우스꽝스럽고, 기발하고, 장난처럼 되다 문득 씁슬한 이야기들. 내게 익숙해질 만한 장르들이 한꺼번에 파괴해버리는 책. 그것이 바로 F.스콧 피츠제랄드의 단편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