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연못> - 분노와 응어리의 범벅

2010. 4. 2. 01:56리뷰/영화

작은 연못
감독 이상우 (2009 / 한국)
출연 신명철, 전혜진, 박채연, 이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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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월동의 롯데 시네마에서 영화 <작은연못>을 보았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때부터 꼭 보고 싶은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부산이라는 먼곳을 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잊혀졌는데...

한 선배가 인천에서 시사회를 하니 보고 싶으면 말하라고 하더군요. 오랜만에 여친한테 영화 보여준다고 꼬셔서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노근리 양민학살. 그리고 그것을 다룬 영화. 제목 <작은연못> 김민기 작사ㆍ작곡의 노래.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나름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내내 답답함과 응어리. 그리고 엄청난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낱 얕은 지식을 비할데가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같은 마을 사람이지만 소위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이 몰래 집으로 찾아와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경찰들이 그 사람을 잡기 위에 들이치고 그는 도망갑니다.
 

그리고는 아주 평화롭고 일상적인 시골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람들은 같은 마을에 살기 때문에 어느 누구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사를 합니다. 도박을 해서 집을 나가겠다는 부인과 그를 쫓아가는 남편. 어떻게 보면 챙피한 일이지만 그들은 서로 쫓고 쫓기면서도 길가에 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서서 인사를 합니다. 그렇게 순박하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마을 공동체. 전쟁이 난지 한달이 지났지만 자신들의 마을로는 전쟁의 화마가 닥칠것이라고는 단한번도 생각하지도 않은채 평화롭기만 합니다.
 

그러던 그들 앞에 미군이 나타납니다. 그것도 일본인을 데리고 말이죠. 그리고는 일본말로 이야기 합니다.
 

“이지역은 군사 작전 지역입니다. 그러니 모두 마을을 떠나십시오”
 

저는 이부분이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아는 지식이라곤 미군이 피난을 종용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미군이 왔으니 통역을 해줄 한국 군인하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미군이 아닌 일본인이 마을을 떠나라고 하는 모습에 황당했습니다. 그리고는 일본이 조선을 떠날 때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말이 생각 났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미군과 함께 다시 한반도에 들어 온걸까요?
 

일본인을 대동한 미군에 의해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마을 뒷산으로 피신을 하지만 곧 미군들은 빨치산이 나오는 곳이라며 남쪽으로 내려갈 것을 종용합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남쪽으로 떠나는 그 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집안은 어미니의 만류에 의해 피난을 가지 않고 그 산에 그냥 남게 됩니다.


“난리 통에 무리 지어 다니는게 아니야. 그러면 모조리 몰살당해”
 

앞으로의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님 오랜 세월을 겪어오면서 봐온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남쪽으로 산에서 내려오지만 미군들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남쪽으로 보냅니다. 밤길을 재촉하며 남쪽으로 내려가지만 길에서 보초를 서던 미군들은 그들을 멈춰 세우고 강가로 내려 보냅니다. 그리고는 총으로 위협을 하죠. 그대로 강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피난길을 나섭니다. 무더운 여름 길을 걷고 있는 그들앞에 또다시 나타난 미군.

이번엔 부상당한 미군병사를 태운 트럭의 앞길을 막는다며 그들을 철로위로 몰아갑니다. 트럭보다 못한 대한민국의 국민들. 참 자존심히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철길을 따라 또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나타난 미군. 이번엔 총을 겨누고 모두 앉힌 뒤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피난민 중에 학생이 일본말로 물어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은 딱짤라 말합니다. “나도 몰라” 그러고는 미군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행기가 날라오고 미군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그 자리를 떠납니다.

아마 노근리 사건을 아시는 분은 짐작하신 그 일이 벌어집니다. 이야기로 듣고 기록을 아는 것과 당시의 상황을 보는 것은 이리도 달랐습니다. 뜨거운 땡볕아래 앉아있는 주민들 위로 미군은 폭탄을 퍼붇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현장..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폭탄으로 사지가 찢기고 팔다리가 잘려나갑니다.

저는 이장면을 보면서 미군에 대한 분노와 또다른 분노는 한국정부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자국민이 처참하게 사지가 찢겨 나가고 죽어가고 있는데 한국군이나 관련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말도 알아 듣지도 못한채 미군들한테 죽임을 당하는 마을 주민들... 그런 살생을 하는 미군 보다 저의 분노는 그렇게 방치하고 만든 한국정부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아마 이런 장면은 영화 초반에 암시 했을 수 도 있습니다.
 

화 초반에 전쟁이 나자마자 부산으로 먼저 피신한 이승만 대통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주민 중 한분은 빨리 피신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전쟁이 시작 되자마자 국민들을 버리고 홀로 부산으로 피한 대통령. 그리고는 말로는 북진통일을 외치는 대통령. 이미 철길에서 나라의 보호도 없이 이유도 모른채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 었나 봅니다.
 

그렇게 철길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군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주민들을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죽이는 과정은 결국 상부의 지시를 받고 무고한 양민임을 알고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났습니다. 생명의 기쁨을 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 하지만 아이의 울음 소리는 생명의 기쁨을 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태어난 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어린 아이들이 여기 저기서 울기 시작 하고,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리자 마자 미군들은 다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아이의 울음을 멈추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한 아이의 아버지는 우는 아이를 데리고 물속에 아이 머리를 집어넣어 죽게 만듭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죽일 수밖에 없는 그 처참함. 그렇게 3일간의 사격뒤에 쌍굴다리는 파리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 인민군 소년병사가 나타나 소리 칩니다.
 

“살아 있는 동무들 있으면 나오세요. 괜찮아요. 미군들은 물러 갔습니다. 살아 있는 동무들 없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일어나는 같은 또래의 생존자. 두 아이의 눈이 마주쳤을 때 왠지 모를 응어리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8년간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이 나왔습니다. 살아오면서 단 한 시도 미군이 저지른 일을 잊은적이 없다는 정은용씨. 그래서 책 <그대, 우리 아픔을 아는가>를 펴내게 됩니다. 8년간의 제작노트가 펼쳐지면서 결국 저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가슴 아파서, 또 너무 화가나서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노근리 학살 뿐아니라 학생때 가보았던 거창 양민학살 현장. 당시의 탄광굴에서의 음산함과 한이 다시금 제 몸에 전해져 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을 펼치기 위해 네이팜탄을 무차별 떨어트려 양민들을 쫓아내고 죽였던 월미도....


알려지지 않은 역사, 진실..... 이런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제작영상에도 나타났지만 투자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인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돈을 십시일반하여 지금의 영화가 만들어 졌습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한 행동.
 

오늘 제가 본것도 바로 100명의 사람들이 만원씩 내서 필름한개를 구매하고, 영화관 하나를 빌려 볼수 있게 한것이었습니다. 주저없이 저역시 구매켐패인에 참여하였습니다. 내가 낸 만원으로 200여명의 사람들이 이영화를 볼수 있다면 그리고 함께 분노하고 아파한다면 그러면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진 않을 테니까요.




작은 연못
작사/작곡 김민기

깊은산 오솔길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산 작은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속의 붕어두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수 없게 되었죠

깊은산 오솔길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푸르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물속 깊이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 속을 헤메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휙 지나가는데

검은 물만 고인체 한없는 세월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메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산 오솔길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초등학교때 이노래를 처음 접했습니다. 처음에 아주 아름답던 가사. 그리고 선율. 하지만 "어느 맑은 여름날.." 소절에서는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누나에게 이 노래에 대해 물어보니 분단에 상처를 가진 노래라고 알려주더군요. 남과북이 서로 싸우다 결국 모두 죽게되는... 지금도 이노래의 의미 잘 기억해야 할 것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과북이 싸우는 일은 그만해야겠지요..


* 이 글은 주권닷컴에도 공동으로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