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분노가 버무려진 삼도봉 美스토리

2009. 3. 28. 11:57리뷰/연극 & 공연


동숭동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삼도봉美스토리를 보았다.
연극의 정보없이 그저 우리의 창작극이라는 것과 소극장에서 진행된다는 정보만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연극을 보러갔다. 일이 너무 늦게 끝나 8시 공연인데 20분이나 늦게 도착하여 겨우 앞쪽에 자리에 살며서 방해 되지 않게 조용히 앉아서 관람하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봐서 그런지 그냥 내용도 모르며 보기 시작하는데.. 보는 내내 웃음과 분노와 슬픔이 베어나오는 연극이었다.

간만에 이런 감성을 갖게 만드는 연극을 본적 있을까?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 너무 좋은 느낌을 가져다 주었기에 너무 행복했다.

연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마주한 경계의 삼도봉이 있다. 평화롭던 이곳에 때아닌 의문의 살인방화사건이 발생하는데, 특이한 것은 불에 탄 사체의 머리가 없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세명의 농부가 용의자가 되는데,  그 세명은 다름 아닌 마을이장이며 충청도에서 온 노상술. 경상도에서 온 순진한 총각 배일천. 그리고 전라도에서 온 농민운동 출신의 갈필용이었다.

머리가 없는 사체를 두가 세가지의 사투리로 머리를 지칭한다. 대가리, 대그빡, 대갈빼기.

이 세명의 용의자를 데리고 육감적인 형사 장대식은 사건을 풀어가기 시작하는데 연극은 이 세명이 진술을 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오른 삼도봉 미국산 양곡장에서 머리가 없어진 불에탄 시체가 발견된다. 이 시체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재미난 것은 이 시체가 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상 술만 마신다고 하여 노상술인 충청도 마을 이장이 술에 추해 그 빵으로 된 시체를 산돼지 구인줄 알고 안주삼아 다리를 뜯는 장면은 폭소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연극은 계속해서 장대식에게 세명의 진술이 진행되지만 듣기 시작하지만 그럴 수록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져 들기 시작하고, 이시점에서 각자의 사연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사연이 서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먼저 노상술이야기다. 어느날 노상술은 또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도중에 집을 나가는 아내를 만난다.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30년 넘게 살아온 본인의 집이 무허가라 철거하게 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그러면서 아내는 농촌의 힘겨운 삷에서 벗어나 노상술을 떠나게 되고 집을 지키기 위해 노상술은 면사무소의 이주사를 찾는데 이주사는 무허가 건물이라며 철거를 이야기하고 노상술의 부탁을 거절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돈 없고 ‘빽’없는 서민들에게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태풍으로 지붕은 날라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누라마저 가족을 내버려 두고 떠나버리고, 집은 철거되게 생긴 상황. 모든 것이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지붕 날라간 집을 오픈카라 여기며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치 우리네 서민들의 삷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

이대목에서 몇십년 넘게 터전을 일구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단지 행정적인 이유로 강제철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얼마전 있었던 용산참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난한 이들에게 벌어지는 상황.

두번째 농촌총각 배일천의 이야기는 사회문제가 되었던 결혼원정 이야기다. 농촌에 결혼하려는 여자가 없으니 당연히 농촌에 노총각이 늘어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배일천 역시 베트남 처녀를 얻기 위해 거금을 준비해 떠나지만 사기만 당하고 무일푼으로 돌아온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게 면목도 없고, 삶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마지막 갈필용의 사연은 슬픔과 분노를 자아냈다. 가뜩이나 농가 부채만 늘어가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미국쌀수입. 농민들은 분노하고 갈필용은 농민들과 함께 대규모 시위의 맨 선두에 선다. 그런데 그곳에서 군복무중인 (전경으로 차출된) 아들을 만나며, 반가움과 놀라움이 함께 겹친다. 이제 말년인 아들은 아버지에게 "중대장이 아들 잠도 안 재우고 뺑이쳐서 아그들 눈 핑돌아 버렸어요. 분위기 않좋으니까. 뒤로 물러서서 설설 하세요" 아버지인 갈필용 역시 "너도 살살해라. 여기 있는 양반들 다 느그들 아버지 같은 나이인께. 때리지 말고, 방패로만 살짝 밀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전경들의 진압이 시작되고 한 전경이 갈필용 머리를 향해 가격하는 곤봉을 아들이 대신 맞아 그자리에서 죽는다.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언론은 같은 전경 동료에게 맞아 죽은 것이 아닌 시위 진압 과정에서 죽었다는 것으로만 나왔을 것이다...

이장면을 보면서 2006년 겨울 쯤인가 여의도 농민대회때 돌아가신 전용철 농민이 생각난다. 위에 있는 것들은 빽없고, 돈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고 서로 다치게 만들고 본인들은 아무 걱정없이 잘살고 잘먹고 있겠지. 분노와 나중에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수 없었다.

세명의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이 사연은 지금 대한민국에 처해진 우리네 서민의 단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수입쌀, 태풍, 농어민 융자, 농촌총각, 철거 등 사회적인 이슈를 거침없이 꼬집으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분노, 슬픔을 자아내는 삼봉도美스토리.

이명박 대통령이나 소위 사회 고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 꼭 보고 뭔가를 깨닫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