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인 ‘임의가입’ 허용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2009. 3. 12. 13:06세상은

자영업인 ‘임의가입’ 허용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정부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실효성 분석
2009-03-12이상동/새사연 경제연구센터장



1. 들어가며 : 고용보험법 개정안 논의의 배경

■ 정부, 고용보험법 개정 추진
- 3월 8일 일제히 언론들은 정부가 4월 임시국회에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키로 했다고 보도함
- 애초 노동부는 개정 법률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경제 상황을 감안해 조기에 처리하기로 한 것임

■ 개정 법률안의 핵심 내용은 자영업인에게 실업급여 가입을 허용한다는 내용
- 개정 법률안은 영세 자영업인의 고용보험 임의가입을 허용하고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
- 현행 고용보험 상의 실업급여 사업은 임금노동자만이 가입 대상으로 되어 있어 자영업인들을 수혜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고 있는 실정

■ 정부안은 실효성이 의심스러움
-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인들에게 고용안전망을 제공한다는 취지는 십분 동감함
- 그러나 현재 준비되고 있는 정부안대로 법률이 개정된다면 영세 자영업인의 고용보험 가입은 극소수에 그칠 전망
- 정부가 재정여건을 감안하여 4인 미만의 소규모 자영업인들에 한해 ‘임의가입’ 형식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기 때문. 당장 보험료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영세자영업인들의 고용보험 가입은 미미할 전망
- 법적으로 가입을 강제하고 있는 임금노동자들조차 가입율이 58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상황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음

■ 이 글의 목적과 내용
- 정부가 검토 중인 자영업인 고용보험 가입의 실효성을 논함
- 정부 안의 구체적 내용을 분석, 평가하고
- 자영업인 실업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 시급한 과제를 제안함

2. 정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

■ (참고) 현행 고용보험의 자영업인 관련 사항
- 현행 고용보험에서 자영업인은 실업급여 혜택을 제외한 사업에는 가입이 허가되어 있음. 물론 이 역시 ‘임의가입’ 허용임. 고용보험법 113조(자영업인에 대한 특례)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영업인은 보험료징수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자기를 피보험자로 하여 이법(제3장의 규정만 해당한다)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함
- 현행 자영업인의 고용보험료는 고시금액(2009년 현재 179만 원)×0.25퍼센트가 적용됨. 이는 고용보험의 두 가지 계정 중에서 실업급여가 아닌 고용안정ㆍ직업능력개발사업의 적용을 위한 보험료이며, 150인 미만기업의 요율과 동일함

■ (시기) 빠르면 하반기부터 개정 법률안이 시행됨
- 정부는 4월 임시국회에 영세 자영업인의 고용보험 임의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제출할 예정
- 법안이 통과되면 시행령 개정 및 전산시스템 구축 등을 마치고 하반기부터 고용보험 가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

■ (형식) 사회보험 임의가입 형식으로 허용함
- 현재 임금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당연가입’ 방식이 아닌, 희망에 따라 운용하는 ‘임의가입’ 제도임
- 여기서 ‘당연가입’이란 흔히 ‘강제가입 방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함. 고용보험 가입 대상 사업장에 소속된 가입 대상 노동자와 사업주는 무조건 가입하는 것을 법률로써 강제한다는 뜻
- 현행 한국의 고용보험은 사회보험의 원리를 엄격히 적용하는 경향이 있어 ‘당연가입’과 ‘임의가입’ 모두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피수급자격을 얻을 수 있음. 또한 저소득 취업자에게는 보험료를 면제하거나 고소득 취업자에게는 누진적인 요율을 적용하는 등의 재분배 장치가 없음

■ (대상) 대상 자영업인은 최대 412만 명으로 추정
- 직원을 다수 고용한 자영업인은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으로 알려짐. 즉, 영세자영업인만 포괄시킴. 이는 정부의 재정여건을 감안한 것으로 보임
- 1월 현재 자영업인은 559만 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이며, 이 가운데 대상 자영업인은 412만 명으로 추정

■ (내용) 현재 불허되고 있는 자영업인의 ‘실업급여’ 가입을 허용
- 현재 허용되지 않는 자영업인의 실업급여 가입을 가능하게 함. 이 때 자영업인만의 실업급여 계정을 신설하여 운영하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음
- 참고로 임금노동자의 실업급여사업을 위한 고용보험료는 노사가 각각 예상임금총액의 0.45퍼센트를 부담하고 있음

3. 정부 개정 법률안의 문제점

■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무점포’ 자영업인들 사실상 배제
- 정부는 이번에 법률안이 개정된다면 412만 명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함정이 숨어 있음
- 무엇보다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무점포’ 자영업인들이 완전 소외될 가능성이 큼. 경제활동인구조사로는 약 559만 명의 자영업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현재 국세청이 종합소득세를 납부하는 자영업인으로 파악하는 수는 460만 명 정도. 따라서 최대 약 100만 명은 ‘무점포’ 자영업인, 통칭 노점상으로 보이며 이들이야말로 고용안전망이 절실한 집단이라 할 수 있음. 지금까지의 고용보험 행정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법률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무점포’ 취업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할 전망
- 현행 고용보험법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자영업인은 ‘사업자등록을 한 자’를 말함. 사업자 등록을 기피하는 무점포 자영업인들은 고용보험 가입 자격이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임

■ 영세 자영업인들의 가입을 유도할 장치가 없음
-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분배 기능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임. 이는 현행 제도가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납부에 대한 기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임. 사회보험의 수혜가 소득에 반비례하여야 하고 실업의 위험이 큰 자에 대한 보호가 설계되어야 하지만 이런 장치가 대단히 취약함(이른바 ‘수혜의 역진성’)
- 이런 상황에서 고용보험의 가입에 대해 많은 저소득 노동자들이 보험료 부담만 생기고 혜택은 적다고 인식하고 있는 실정
- 종합소득세 납부자 중 85퍼센트에 이르는 종합소득 2,000만 원 이하의 저소득 자영업인들 역시 고용보험 가입을 기피할 것으로 보임

■ 정부의 재정 지원 전무
- 최근 논의되고 있는 ‘2009년 추경예산안’에서 자영업인 고용보험과 관련된 것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됨. 노동부 추경예산 잠정안 1조 9,000억 원 가운데 고용보험기금을 확충하는 데 사용되는 재원은 없음
- 고용보험기금을 확충하기보다는 추경예산은 오히려 최소 1조 1,500억 원의 예산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추가로 사용할 것으로 보임. 고용보험기금에서 추가로 지출되는 예산은 자영업인 고용안전망과는 무관하며 기존 보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임
- 결국 정부는 자영업인 고용보험 가입 확대를 위해 일반회계의 지원을 배제하고 있는 것임.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는 자영업인들이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만으로 자영업인들의 실업급여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임. 보험료 자체가 부담스러운 영세자영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실업급여 수당을 보험료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대단히 비현실적임

■ 고소득 자영업인들의 가입 방안 없음
- 자영업인들의 고용보험 가입이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직 종사자 등의 고소득 자영업인들이 반드시 가입하도록 설계되어야 함
- 사회보험의 원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취업자들이 납부한 재원이 실직의 위험에 놓이거나 실직 상태에 있는 불안정 취업자로 재분배되도록 하는 것임
- 고용보험법이 4인 미만의 자영업인들만을 대상으로 가입을 허용한다면, 고소득 자영업인들의 비중이 높은 대규모 자영업 사업장을 제외시키는 것임. 고소득자가 제외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사회보험의 근본 취지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임

4. 나가며 : 과제와 제언

- 이번 정부안 대로라면 자영업인 중에 고용보험 가입자는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됨. 더구나 가입자들이 실업급여의 수혜 혜택을 보는 데에는 또다시 장기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가입 기간이 짧아 충분한 수당을 받지 못할 것임
- 자영업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이라는 장기적인 계획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 실업대란의 위험에 놓인 저소득 영세자영업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도 못할 것임
- 자영업인들을 전국민 고용안전망으로 포괄시키고 시급히 영세자영업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시급한 과제 두 가지를 제안함

■ 첫째, 정부는 노사가 마련한 기금의 자의적 사용을 중단하고 일반회계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함
- 노동부는 일반회계 예산이 미미하며,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사가 적립해 온 고용보험기금에 의존해 예산을 집행해 왔음(아래 표 참조). 이 때문에 그동안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으로부터 ‘고용보험기금은 정부의 쌈지돈’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한국노동연구원, 2007)
- 많은 나라에서 고용보험기금에 정부가 상당한 재정을 지원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기금의 재원을 축내고 있는 실정
- 더구나 고용보험기금으로 지출되는 많은 사업들은 사업 성격 상 일반회계에서 재원을 확충해야 하는 것들임. 예컨대, 청소년 대상 사업이나 고용지원서비스센터 건립비 등이 대표적임. 정부의 이런 행태는 예산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음
- 이러한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 한 고용보험 수지적자의 위험성이 상존할 수밖에 없어 가입자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어렵게 될 것임
- 따라서 자영업인들의 고용안전망을 확충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관행부터 개선해야 함

■ 둘째, 영세 자영업인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해야 함
- 영세 자영업인들을 고용안전망으로 포괄해내기 위해서는 실업부조를 포함하는 고용안전망을 구축하여야 함
- 실업부조는 고용보험의 수혜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한 실업자 또는 유사실업자를 위한 고용안전망이라 할 수 있음.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지난 장기실업자, 취업경력이 없는 청년실업자 그리고 자영업 도산자 등을 주 대상으로 함
- 현 경제상황으로 볼 때 많은 영세 자영업인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실업자로 전락하게 될 것으로 보임. 따라서 이들에게 지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안전망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실업급여 자격이 아니라 실업부조 자격을 부여하여야 함
- 유럽 국가들은 이미 대다수 국가가 실업부조 제도를 오래전부터 도입했으며, 한국에서도 실업부조 제도의 미비가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형성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음(김안나 2006 참조)

- 우리나라는 근로능력자를 정책 표적 집단으로 하는 사회보험(고용보험 등)과 빈곤가구를 정책 표적 집단으로 하는 공공부조(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제도를 사회안전망으로 갖고 있음. 그러나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이에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갖고 있어 수혜자가 소수에 그치고 있음. 뿐만 아니라 각각의 안전망이 실질적으로 안전장치를 제공하고 있는 못한 수준임
- 사각지대에 놓인 집단 가운데 가장 대규모 집단이 영세 자영업인들임. 광범위한 자영업 비중은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과 멕시코 등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적인 현상임. 자영업인과 이들과 밀접한 고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무급가족종사자를 합치면 전체 취업자의 30퍼센트에 이름. 이처럼 대규모 취업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은 사회안전망이라 할 수 없을 것임

이상동 sdlee@saesay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