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 충격의 향연-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2009. 8. 25. 00:23리뷰/책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고미숙 (사계절,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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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정말 유쾌하고 막힌 가슴이 확 뚫리는 책을 접했다. 바로 고미숙 작가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임꺽정과 지은이 고미숙의 의식사이를 넘나들었다. 내가 흔히 접하고 있는, 아니 많은 이들이 알고 있 임꺽정과 청석골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임꺽정과 청석골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현실의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임꺽정의 삶이 지금의 현실에서 대다수 비주류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절실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자 이제 그럼 책 속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임꺽정을 만나보자. 이책은 크게 7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은 경제 분야다 제목은 "마이너리그 혹은 노는 남자들". 2장은 공부 - 길 위에서 배우고, 이야기로 터득한다. 3장은 우정 - 세상은 넓고 친구는 많다. 4장은 사랑과 성 - 야생적인, 너무나 야생적인. 5장은 여성 - 복수는 나의 힘! 6장은 사상 - 매트릭스 혹은 '사주명리학'. 7장은 조직 - 청석골 '움직이는' 요새.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땅의 청년 백수를 위한 작가의 말이 있다.

사실 이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이 땅의 청년 백수, 혹은 비정규직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생각 된다. 이제 고미숙이 바라보는 임꺽정과 청석골에 대해 살펴보자.

1장 | 경제 - 마이너리그 혹은 '노는 남자들'

1장은 임꺽정과 청석골 칠두령의 경제 이야기다. 하나 말이 경제 이야기지 실은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의 놀면서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임걱쩡과 청석골 칠두령은 쉽게 이야기 해서 요즘 말로 '노는 남자'들이다. 차별과 모순 덩어리로 이루어진 세상에 대해 울분은 강했지만 땅이나 직업에 대한 욕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 자체가 없었다. 즉 ' 가장 콤플렉스' 같은 것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달인이고, 놀면서도 당당하고, 배울수 있는 것은 다 배운다는 것이다.

임꺽정은 다 알다시피 힘도 장사요 검술의 달인이다. 봉학이는 활 쏘기의 달인이고, 유복이는 표창의 달인, 천왕둥이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축지법의 도사요, 돌석이는 돌팔매, 곽오주는 쇠도리깨, 막봉이 역시 손꼽히는 장사였다.

고액의 연봉에 평생직장에 매여 늘 가족을 위해 혹은 먹고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현시대의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작가는 이책에서 우리시대 백수들의 '생존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전한다. 사실 이책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하고 사람과의 관계로 끝나는 이야기다. 즉, 책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것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다. 그 관계가 모든 시스템의 원동력이기도 하고, 삶의 활력소 이기도 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정과 의리다. 뒤에서 살펴 보겠지만 임꺽정과 청석골의 칠두령이 '노는 남자'들이지만 살아갈 수 있는 것또한 바로 이 사람과의 관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하며 수천세대가 같은이 닭장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관계는 미미하기 그지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집 말고는 왕래가 없다. 친척간의 왕래도 점점 그렇게 변한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임꺽정이 살아가던 시대는 '사돈의 팔촌'까지 핏줄과 경제가 기묘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지금시대 처럼 가족의 틀에만 얽매여 그 가족끼리 먹고 살려고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박차가 나감으로 인해 사돈의 팔촌까지 가족의 관계로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 상황 자신들이 즐거운 이 모든것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에게 속속들이 작용하고 또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네트워크의 기본은 또한 공동체이다. 옛날 인디언 부락들의 공동체 처람 청석골과 임꺽정은 그 공동체를 기본으로 세워지게 된다. 자신들의 가족의 틀에 벗어나 함께 살아가야할 민중들과 그 틀을 형성하고 이루어나가는 경제 체계이다. 누가 욕심부려 재물을 독차지 하려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다고 많이 가져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만하게만 지내는 것이다. 먹을게 없으면 도적질을 해서라도 청석골 전체를 먹을수 있을 만큼 구하고, 풍족해지면 그저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끔찍히 위해주는 공동체를 꾸린다. 그래서 청석골은 폐허에서 시작됐지만 금새 부락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2장 | 공부 - 길 위에서 배우고, 이야기로 터득한다.

<임꺽정>의 인물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배움의 길에 나선다. 물론 이길에는 목적지가 없다. 어디를 가야할지 그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러다가 또 얼마든지 옆으로 샌다. 요즘 우리들 처럼 놀이와 배움이 따로따로가 아닌 놀이가 곧 배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요즘 같은 청소년들에게 배움이 즐겁냐고 물어본다면 즐겁다고 답하는 청소년들이 몇이나 될까?

2006년 OECD 학업성취도 비교 국제 연구(PIS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월등히 높은 성적을 냈다. 핀란드와 공동으로 1위한 과목도 많았고, 총점역시 높았다. 하지만 언론은 우리나라가 아닌 핀란드를 주목했다. 이유는? 바로 공부를 하는데 스스로 하는지 즐거운지를 묻는 문항이었다. 핀란드의 학생들은 스스로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한다고 한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대다수는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의무감으로 하는 학생이 태반이었다. 반 강제적으로 하는 공부 그렇게 억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니 성적을 좋을 수 밖에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언제든 공부를 그만 둘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면 핀란드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말래도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다. 마치 임꺽정과 그 친구들 처럼.

우리 나라의 공부는 곧 좋은 대학과 학벌, 그리고 좋은 직장으로 이루어져있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다보니 공부는 재미없고, 평생의 스트레스로 남을 수 밖에 하지만 핀란드의 학생에게 배움은 자신의 목표 아니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임걱정과 청석골 사람들의 배움은? 별거 없다. 그냥 배움 자체가 즐거움이고 놀이이기 때문이다. 앞의 우리 학생들과 핀란드의 학생들. 그리고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 누가 더 행복할까?

앞서 말했지만 임꺽정과 그의 친구들이 배우는 과정은 다 놀이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즐거움에 노력이 더해져 각자의 영역에서 달인이된다. '활의 달인' 이봉학은 어린시절 외할머니를 따라 절에 들어가 살면서 꺽정이와 유복이와 떨어져 홀로 지내자 심심했다. 그래서 시작된게 활쏘기였다. 장난삼하 한것니 날로 재미가 생겼고, 점차 수준을 높여 갔고, 봉학이의 활은 단 한번도 빗나간적이 없게된다.
박유복이 "표창의 달인"이 되는 것은 더 진한 감동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십여년간 이름 모를 병으로 앉은뱅이로 지내고 있을 때 유일한 놀이가 바로 표창 던지기 였다. 매일매일 그일을 반복한것이 어느덧 신기에 가까웠고, 주변에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기인의 시험을 통과하고 그 기인 덕으로 병이 나아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박유복은 그 기인을 따라 산천을 돌아다니며 그 기인을 스승으로 모신다.

돌팔매의 달인인 배돌석은 어려서 전통놀이로 석전을 즐겨 했다. 석전이란 윗마을 아랫마을 편을 가르고 돌을 던지며 싸우는 놀이다. 어려서 부터 그 놀이에 참가 하면서 부터 점차 실력으 늘고 돌팔매의 달인이 되었다. 천왕둥이는 어려서 백두산에서 뛰어놀던 것이 하루에 백리며 천리며 갈 수 있는 빠른 발과 다리힘. 그리고 호흡을 만들게 되었고, 이는 훗날 청석골의 훌륭한 무기가 된다. 삶과 놀이 자체가 배움이고,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배움은 단순히 문자만을 보는 학습이 아니다. 저마다 다 공부법이 있지만 임꺽정은 문자를 모른다. 그것은 다른 칠두령들도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문자를 모르지만 입으로 이야기로 배운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임꺽정이 '검의 달인'이 되기위해 스승을 만나 검을 배우기 전 일이다.

"너 그래 그(갖바치)에게 무얼 배웠니? 글 배웠니?
"병서를 배웠소. 내가 글을 못하니까 이야기로 배웠소."
"병서를 이야기로 배워? 그래 잘 알겠디?"
"대강이야 알지요."
"어려운 병서를 이야기로 가르치는 사람도 용하지만 이야기로만 듣고 아는 너는 더욱 용하다."

참 간단한 이치다. 무릇 좋은 스승이란 어려운것도 쉽게 풀어낼줄 안다고 했다. 배우는 사람의 처지와 수준에 맞게 말이다. 또한 훌륭한 제자는 그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곱씹고, 한번더 소화를 해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했다. 임꺽정과 칠두령은 정말 무식하다. 하지만 무식한 만큼 말이라면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달변이며 그런 이야기로 배워가며 이런 배움이 전혀 힘들거나 고달픈게 아니다.

임꺽정과 그 친구들의 배움의 방식중 하나는 스승을 만나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스승은 아무한테다 쉽게 가르침을 주지 않지만 한번 가르침을 주면 모든것을 다 준다. 그리고 제자는 그 모든 것을 흡수하고 스승을 뛰어 넘는다. 양주팔(갖바치)가 스승 이천년을 만나는 과정을 살펴보자.

'옛사람은 선생의 집 문앞에서 석 자 눈이 쌓이도록 서 있었다 하니 나도 그만한 정성을 보이리라' 주팔이는 속으로 생각하며 두 손길을 맞잡고 단정하게 서 있었다. 다리에 피가 내리도록 서 있었다. 다리가 떨리었다. 그래도 그대로 서 있었다. 다리가 남의 것같이 되었다. 그래도 그대로 서있었다. 나중에는 주팔이가 쓰러지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아니하여 썩은 나무같이 쓰러졌다.

혹독하다. 하지만 이과정으로 이미 주팔은 배움을 터득한것이다. 이후 이천년은 주팔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 준다. 주팔은 갖바치로 새롭게 태어난다. 요즘 현시대에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진정 스승과 제자가 몇이나 될까?

3장 | 우정 - 세상은 넓고 친구는 많다!

임꺽정과 칠두령의 내력을 보면 이른바 '트라우마'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출생의 비극, 가난과 질병, 멸시와 천대, 원한과 복수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임꺽정과 칠두령은 그 모든 것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드러내놓는다. 상처니 콤플렉스니 하는 식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허물이든 수난이든 자신이 겪은 그대로 고스란이 보여주고, 또 상대방 역시 고스란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린다. 이들은 절대 착하고 좋은 '놈'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절대 나쁜 '놈'들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왜?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시대에 친구들과 사귀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현세에 친구를 사귀는데 자신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보여줄수 있는 사이가 몇이나 될까? 또 그것을 보여 준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현대에 있어 친구란 그저 시간날때 술마시고 잡담이나 남의 뒷담화를 까는게 혹 전부는 아닐가? 혼자 있기 보다는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필요해서. 그러다 보니 적당한 선을 긋고, 거기까지만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에 비하면 임꺽정과 칠두령은 자신들의 모든 속내를 거침없이 말로 쏟아낸다. 그리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뒤끝은 없다. 오히려 싸우면서 정이 더들고, 자신들의 목숨보다도 서로를 위한다. 임꺽정과 칠두령의 최고의 사상은 의리와 자존심이다. 의리와 자존심을 위해서는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있는 현대의 우리들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친구가 뭐길래 그리고 그깟 자존심이 뭐길래 목숨을 내놓는가? 하지만 여기 임꺽정과 칠두령은 바로 그 자존심과 의리가 청성골을 지탱해주고, 일약 전국 팔도를 벌벌 떨게 만드는 원초적 동력이었다.

4장 | 사랑과 성 - 야생적인, 너무나 야생적인!

임꺽정에서는 사랑을 하는데 있어 중간 단계가 없다. 머뭇거림, 잔머리, 확인절차 따위가 없다. 그냥 몸으로 '들이낸다'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표현한다. 몸과 몸이 직접 교감하는 것. 그것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사랑법'이다. 온갖 잔머리에 메뉴얼까지 동원해서 줄다리기를 하지만 정작 사랑이 시작된 다음엔 뭘 해야 할 지 몰라 허둥거리는 우리시대의 연애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

"운총아, 너 나하고 같이 가서 살려냐?"
"엄마하고 천왕동이는 어떻게 하구?"
"다같이 가지."
"엄마더러 물어보자."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 너 아니? 모르니? 사내가 여인 얻는 것을 장가 든다고 하고 여인이 사내 얻어가는 것을 시집간다고 한다. 너 내게로 시집오려냐?"
"시집가면 무언하니?"
"아들도 낳고 딸도 낳지. 너의 엄마가 너의 아비에게 시집을 온 까닭에 너를 낳고 천왕동이도 난 것이다."
"천왕동이 같은 아들 하나 나볼까. 그래. 내가 시집갈 테다."

은총이가 꺽정이한테 시집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꺽정이가 운총이를 안아 무른위에 올려놓고 젖가습네 손얼 얹어보니, 젖가슴이 봉긋 할 뿐 아니라. 꼭지까지 제법 생겼다. 운총이가 묻는다 "이것이 시집가는 게냐?" 둘은 그길로 천왕당에 가서 축원을 올린다. 그리고 부부가 된다. 꺽정이와 운총이는 백두산에서 만나 같이 사냥을 하다 눈이 맞는다. 둘 다 생애에서 처음 해보는 사랑. 어설프기 짝이 없다. 남자의 프로포즈도 여자의 허락도 담담하기만 하다. 그 다음 바로 몸을 합친다. 부모의 허락은 나중에 받아도 된다. 왜냐 당사자가 살일이니까. 요즘 처럼 부모 상견례에 거창한 프로포즈 또 화려하고 사람많은 예식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5장 | 여성 - 복수는 나의 힘!

임꺽정에서 나오는 여성은 옳건 그르건 좋건 나쁘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의 욕망과 의지를 드러냄에 있어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임꺽정에서 나오는 여성에서 청순가련 혹은 우아한 현모양처의 이미질랑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위풍당당할 뿐이다. 위풍당당한 그녀들. 그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궁궐에서 암투를 벌이는 여인네들이 오히려 안쓰러워 보일 정도다. 황진이만큼의 자유를 누리진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임꺽정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여인천하>의 주인공처럼 성과 권세의 노예로 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임꺽정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

황진이를 살펴보자. 황진이가 당대 최고 도승이던 지족선사의 도를 무너뜨리고 같은 수단으로 서경덕을 놀리려고 어느 가을밤 초당에 와서 잠을 잤다. "무섭다고 꾀를 피우고 처사의 방에 나가지 아니하고, 춥다고 핑계하고 처사의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험히 자는체하고 서경덕의 온몸을 건드렸다. 하지만 서경덕은 아랑곳 하지 않았고, 이후 황진희는 서경덕과 한방에 잔적이 없고, 놀러를 와도 초당의 다른 방에서 잘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갖바치의 친구 심의가 서경덕을 찾아왔고, 그날은 황진이도 찾아오 날이었다. 방이 두개 뿐인 초당에서 심의와 서경덕이 한방에 황진이가 한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날 따라 황진이가 서경닥과 심의 방에 건너온다.

"나는 혼자 자기 싫어요. 손님이나 선생님이나 두 분 중에 한 분이 혼자 주무시지요"(진이)
"손님더러 혼자 자랄 수야 인냐. 내가 혼자 자지."(서경덕)
"이 방에서 셋이 자지 못할까?"(심의)
"그래도 좋겠지"(서경덕)

황진이도 오케이 그래서 바로 셋이 같이잔다. 그런데 왜 심의는 자신이 혼자잔다고 하지 않았을까? 은근히 함께 자고 싶었을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내 생각엔 심의의 그런 마음을 황진이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장난을 치고 싶었을 것이다) 황진이는 서경덕과 심의 사이에서 자게 되었다. 물론 그냥 자지않고, 계속해서 심의의 몸을 더듬고, 장난을 쳐댔다. 밤새 심의는 잘 수가 없었다. 황진이가 오히려 남자를 가지고 논것이다.

배돌석이가 졸개 김억석이의 딸과 결혼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당시 여성 편력이 심했던 배돌석, 졸개 억석이가 자리를 비운 틈을타 그저 그 딸과 하룻밤 즐기려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찾아가서는 무작적 들이댄다. 대충 설득했다 생각하고, 이불을 깔고 드러 눕는다. 두러 누운 돌석이에게 순식간에 칼을 들이 댄다.

"꿈적만 하면 찌를 테니 그리 아시우."
"당신이 나너러 수청을 들라니, 나를 화냥년으로 여기셨소?"
"내가 너너러 언제 화냥년이라구 하드냐."
"두령만 사람이 아니오. 졸개도 사람이고 졸개의 딸도 사람이오. 오장육부가 다 같은 사람이오."
"누가 사람이 아니랄세 말이지."
"사람인 줄로 알면 어째 사람 대접을 안하시오?"


그리고는 단도직입으로 아내를 삼을 것인지 첩으로 삼을 것이지를 묻고 돌석이로 부터 아내를 삼겠다는 말을 얻어낸다. 돌석이 입장으로 하루 즐기로 간것이 억석이의 딸의 의중대로 코가 끼게 된것이다. 돌석이는 이후 여성 편력도 사라지게 된다.

임꺽정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늙었건. 어니면 나이가 어리건 같에 다 강하게 나온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다. 유인숙의 노비 갑이는 사화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정적 정순붕의 집안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갑이는 정순붕의 말을 잘들어 신입을 얻게 되었고, 침실을 드나들게 된다. 훗날 그 믿음을 위해 정순붕에게 복수를 한다. 나중에 발각되어 잡혀 죽게되지만 오히려 당당하다 그리고는 정순붕의 아들에게 훈계를 늘어놓는다.

호랑이에게 외아들을 잃은 노모의 복수 역시 대단하다.

"봉산 호랭이가 자식을 물어갔습니다. 그 호랭이를 잡아서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황주, 봉산에 호랑이가 한둘이 아닐 테니 호랑이부터 분간해야 원수를 갚아주지 않겠느냐?"
"봉산에 있는 호랭이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주십시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있는 여성을 이길수는 없는 노릇이었나보다. 결국 호랑이 사냥을 나가고 그 새끼까지 모조리 죽여 복수를 이룬다. 그러고는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삶을 살아간다.

6장 | 사상 - 매트릭스(Matrix) 혹은 '사주명리학'

<임꺽정>에는 조선 지성사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한창 성리학에 입문하고 있는 청년 퇴계. 윤원형의 세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남명 조식. 인종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평생 간직한 채 살아가는 천하문장 하서 김인후 등이 유학사의 빛나는 별들이라면,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과 조선 사상사의 아웃사이더 화담 서경덕, <용호결>의 저자 북창 정념, 허준과 함께 <동의보감>의 편찬에 참여한 정작 등은 도교사의 스타들이다. 한편 문정왕후 시절은 불교의 중흥기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유불도 삼교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당시 조선시대는 100년 넘게 정권을 잡고 있는 훈구파들이 이미 썩을대로 썩어 있었다. 그것에 새로운 개혁 프로젝트가 바로 조광조였다. 하지만 그는 탁행되고 역모로 몰력 죽임을 당하게 된다. 당시의 조선 민중들은 조광조와 그 추종자들이 하나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꺼져가자 사람들은 그야 말로 조선시대 촛불 집회를 연다. 조광조와 친구들을 풀어달라고. 정권은 모두 같을까? 자신들모이는 대중의 한목소리가 한결같은 두려움인가보다. 2008년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조정은 탄압을 시작하고 주동자를 색출한다. 그런데 서로가 다 자기가 주동자라며 잡아가라고 외친다. 마치 2008년 촛불 집회때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을 체포하라고 외친것 처럼. 권력자들은 이런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들은 개혁을 바라지만 늘 권력은 민중들의 반대에 서서 개혁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종교라든지 어떤 학문이 어디에 무엇을 위해 쓰여야하는지를 이책에서는 극명하게 이야기해준다. 도교에서 보면 갖바치와 함께 수련한 김륜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스승 이천년 밑에서 함께 수련을 하였지만 늘 요행과 요술과 도술로 돈벌 궁리만을 하여 스승은 갖바치에게만 모든 것을 전술해주고 죽어버린다. 하지만 훌륭한 스승 믿에서 배운 보람이 있는지 점을 무지 잘본다. 결국 그점을 권력을 위해 쓰게 되고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에게 혼쭐이나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는 시골에 묻혀 살게 된다.

불교의 보우라는 자가 있다.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담고 있는 미타경이라는 것을 가지고 권력의 최정점에 서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반면 병해대사가 된 갖바치는 자신의 능력을 어려운 민중들을 위해 사용한다. 병자를 낮게하고, 앉은뱅이를 겯게한다. 애를 낳지 못하면 애를 낳게 해준다. 그야 말로 생불이다. 서양의 예수와 같다. 보우는 주문과 기도를 외워 극락으로 가라하지만 병해대사는 선행으로 예전에 부처가하는 수행으로 원치않아도 극락으로 가게된다. 작가는 훌륭흔 능력이라도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무엇이 나쁘다고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7장 | 조직 - 청석골, '움직이는' 요새

소설 말미에 가면 다시 청석골을 비우고 자모산성으로 이동한다. 실제 역사는 자모산선에서 다시 구월산성으로 갔다가 거기서 최후를 맞는다. 거점을 자유자재로 옮길수 있다니. 그야 말로 유목민의 텐트라 할 만하다. 언제든지 요새를 만들 수 있고, 언제든지 비우고 떠날수 있는 것이 바로 임꺽정과 청석골의 기동성. 가장 훌륭한 무기였다. 꺽정이과 그 친구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기동성 때문이었다. 이렇게 요새가 움직이는 한, 권력은 유동적이게 된다.
강령이나 체제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현장, 중요한 것은 오직 그것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현장에서 모든 전략과 전술이 구사된다.

청석골이 이렇게 기동성을 갖출수 있게 된것은 바로 약탈과의 공생이다. 당시 조정은 그야말로 도적의 나라였다. 중앙조정에선 윤원형과 그의 일당들이 팔도의 재물을 긁어모으느라 바빴고, 가렴주구에 지친 민초들 역시 도적들이 되었다. 도적들 중에 단연 독보적인곳이 바로 청석골. 처음엔 오가 혼자서 도적질 하던곳이 임꺽정과 칠두령이 합세하면서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규모가 확장됨에 따라 청석골 인금 마을들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도적질을 해서 부를 축적한 것을 인근 마을 사람들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보니 흉년이 들거나 결정적인 순간엔 백성들은 청석골 화적패로 입당을 해버린다. 여기에는 마을 이방, 아전, 주막 주인도 모두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이러니 청석골을 쉽게 없앨 수가 없는 노릇이다.

청석골이 가벼운 또다른 이유는 칠두령이 저마다 다 잠행과 변신의 달인이라는데 있다. 잠행과 변신이 능하다 보니 어디를 가든 자유롭다. 심지어 자신들의 잡기위해 검문하는 포교들 앞도 위도된 공문서를 가지로 유유히 지나간다. 이뿐아니다. 청석골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 조정까지 심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고급 정보들이 모두 천황동이의 발을 타고 청석골로 속속 들어오게 된다. 이러니 조정에서는 계속 헛탕만 칠뿐이었다. 더욱이 한곳에 거점만 사수하다간 나중에 포위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거점 자체를 여러곳에다 분산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청석골이 없어져도 다른곳으로 가서 준비를 할 수 있다. 여차하면 치고 빠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전국의 도적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비상시에는 동원해서 함께 싸우고 어려우면 흩어져 다시 민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전술과 전략이 청석골을 움직이는 요새. 가볍고 기동성이 빠른 요새로 만든 것이다.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임꺽정의 당시 삶의 방식에서 우리시대의 적용해볼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한 것같다. 특히 청년 백수와 비정규직이라고 불리우는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그. 돈과 정규직에 집착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운 백수가 되어 보자는. 하지만 게으른 백수가 아닌 배우는 백수. 그리고 보다 원대한 세계를 바라보라는 작가의 생각이 엿보인다. 작가 스스로 백수라고 이야기 하는데... 작가가 운영하는 연구소 수입이 정말 얼마인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책을 읽고 나서 임꺽정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