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내일> - 전쟁광, 정치인들, 이 책 보고 정신 차려야 할 듯!!

2009. 5. 11. 19:36리뷰/책

빼앗긴 내일
카테고리 아동
지은이 즐라타 필리포빅 (한겨레아이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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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전쟁이 있는 한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전쟁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국익을 위해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대한민국은 이라크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장본인은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1차세계대전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현대 사회의 모든 전쟁이 아이들의 시각에서 쓰여진 일기형식의 책이다. 어른들의 정치적인 이해가 아닌 그저 전쟁을 겪으면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 표현된 책이다.

책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전쟁은 그자체로 아이들의 내일을 빼앗아 가버린다.


엮은이 즐라타 필리포빅 스스로가 어린시절 전쟁에 대한 참상을 겪으면서 더욱 전쟁에 대한 반대의 입장이 분명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진행중인 전쟁. 하지만 모든 전쟁은 국익을 위함이 아닌 소수 권력자와 정치가들을 위한 전쟁이였다. 즐라타 필리포빅의 일기에서 나온 것 처럼 정치가들(아이들 보다도 못났다고 하여 '아이들'이라고 빗댄다)이 조금씩 양보하며 합의하면 전쟁이 끝날 일이었다. 아니 어쩜 애초에 전쟁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매번 "국익을 위하여"를 외치며 전쟁을 종용한다. 그리고는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녀들은 안락한 뒤편에 있으면서 애꿎은 국민들만 사지로 내몬다.

사랑하는 미미야.
'아이들'(정치가를 의미함)이 타협을 보았고, 어딘가에 서명을 했어, 이 미치광이 짓거리가 곧 끝날 거라는 희망을 안겨주면서. 이제까지 휴전이니 서명이니 하는 말에 번번이 속아 와서 별로 미덥지가 않아. 게다가 오늘 또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세 살배기 남자애가 목숨을 일었고, 그 애의 누나와 엄마가 부상을 입었기 떄문에 더더욱 믿을 수가 없어.
내가 아는 거라고는 정치가들이 심심풀이 삼아 벌인 놀이 때문에 사라예보에서 1만 5천명이 죽었는데, 구 가운데 3천명이 어린애라는 것과 5만명이 장애를 얻었고, 팔다리가 없이 목발을 집고 휠체어를 탄사람들이 거리에 널렸다는 것뿐이야. 그리고 공동묘지에 빈자리가 없어 이젠 희생자들의 시체를 공원데 묻고 있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지.
이 미친 짓거리가 어서 막을 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몰라.
- 즐라타 필리포빅의 일기 中 (보스니아 전쟁) -

어제 신문에 황제가 서부전선을 방문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누군가 시를 썼는데, 그 마지막은 이랬다.

오, 황제여, 환희에 젖어
전쟁터로 향하소서.
온 세계의 운명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놋쇠처럼 단단한 당신의 군대 위로 영광의 황금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하늘 가득 뒤덮을 지니.

어떻게 황제가 '환희에 젖어' 전쟁터로 향할 수 있을까? 곳곳에서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며 죽어가는 병사들의 신음 소리를 듣는다면 황제의 심정이 어떨까?
이말을 했더니 오빠가 피식 웃었다.
"정말로 황제가 전쟁터에 갈 거라고 믿는 거니?"
- 피테쿠루의 일기 中 (1차세계대전) -


어른들은 전쟁은 곧 죽고 죽이는 싸움이요. 적은 무조건 죽여야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의 비친 모습은 적들도 똑같은 누구의 아빠요, 형이요, 오빠요, 삼촌이요, 자식이었다.

그레텔과 나는 소나무 잔가지들을 부러뜨려 가까운 무덤에 던졌다. 우리는 러시아인들의 묘지를 몰래 돌봐주기로 했다. 우리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 무덤 사이를 갈퀴로 고르고 야생화 잔가지들을 무덤 위에 높아 줘야지..

이 전쟁이 뭐가 옳고 뭐가 그른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 군이 승리할 때마다 환호성을 올리긴 했지만 죽은 이들과 다친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 피테쿠루의 일기 中 (1차세계대전) -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시선이 오히려 어른보다 훨씬 정확하고 현명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눈앞이 흐려져 그 어떤 판단도 할 수 없는 미치광이들에 비하면 아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삶속에서 현실을 오히려 더 명확히 바라보고 있다.

몹쓸 전쟁을 일으킨 것도, 우리가 날마다 이 끔직한 고통을 겪는 것도 전부 '정치'때문인 것 같아서, 이 지긋지긋한 정치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단다.
우리 스스로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는데, 왜 정치가 나서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걸까? 다들 알아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는데 말야. 그리고 그 좋은 사람 중에는 세르비아인도, 크로아티아인도, 이슬람교도도 있어. 물론 나는 어린아이고, 정치는 어른들이 하는 거지. 하지만 오히려 우리 같은 어린이들이 정치를 훨씬 잘 할 것 같아. 우리라면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 즐라타 필리포빅의 일기 中 (보스니아 전쟁) -
 

이책은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일기도 있지만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의 일기도 함께 실려있다. 모험심에 들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스무살 청년 에드 블랑코. 그는 동료들과 베트남 전에서 베트공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베트공 말고도 민간인도 함께 죽이게 되는 가해자가 된다. 또한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부상 그리고 씻을 수 없는 기억으로 인한 피해자도 되어버린다. 전쟁은 소수의 권력자와 정치가들의 놀이(?)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아이들과 대다수의 국민들의  피해로 끝나버린다. 

책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분쟁속에 속해있는 두 아이들의 시선도 보여 준다. 시란과 메리의 일기가 그러하다. 두 사람의 일기는 일상적인 테러 속에서 느끼는 이스라엘의 시란의 감정과 자신들의 땅을 빼앗고, 일상적으로 군인들에게 지배를 받아야 하는 팔레스타인 소녀 메리의 감정이 드러나 있다. 폭탄테러에 노출되어 있는 시란의 경우 상대방에 대한 증오감이 가득하다. 반면 메리의 경우 일상적으로 처해진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일기속에 적어 놓고 그 진실을 알리려 하고 있다. 물론 시란의 경우 테러범에 대한 증오이지만 다소 팔레스타인 전부로 확산될 수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역시 바로 전쟁과 분쟁이라는 어른들의 놀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가 협정에 서명했다는 뉴스 아나운서의 말을 들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을 완전히 넘어버린 사람들과 무슨 협정을 할 수 있을까?
- 시란 젤리코비치의 일기 中 (이스라엘) -


거리에서 탱크들이 총을 쏘고 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날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한 남자가 거리에서 숨졌다. 

탱크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서 삼촌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총알이 나를 향해 빗발치듯 쏟아졌다. 2분쯤 지나 총소리가 멎었고 삼촌이 백지장 같은 얼굴로 뛰어 오셨다. 삼촌은 잔뜩 겁을 먹은 아이들을 단단히 부여 잡고 계셨다. 엄마는 내 책상 아래 숨어 계셨다. 조금 있다 난간으로 나가 보니 총알이 수도 없이 박혀 있었다. 
- 메리 해즈보운의 일기 中 (팔레스타인) - 


자살 테러범들이 신의 보호를 받기 위해 기독교도에게 가장 신성한 공간인 교회에 숨어들었을 때, 이미 그들은 또 다른 한계선을 넘은거지. 그들은 심지어 살인자들이라 할지라도, 신성한 곳에서는 아무도 자기들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야.
- 시란 젤리코비치의 일기 中 (이스라엘) -


정말로 가슴 아픈 건 우리의 지도자들이 짐짝처럼 이 나라 저나라로 뿔뿔이 보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우리를 괴롭히는 동안 우리 땅을 지켜 냈고,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팔레스타인이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이 아니라, 그들의 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 주었다. 그들이 탄 버스가 예수탄생교회를 떠나는 순간 팔페스타인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마치 진실처럼 보도하는 언론을 참을 수 없다. 목사님들도 당신들의 식량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이런 따뜻한 대우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베들레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고, 함께 생활해 왔으며, 학교에 갈때나 시내에 나갈 때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말하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 메리 해즈보운의 일기 中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두 소녀의 일기를 보면 가슴이 착찹하다. 특히 이스라엘 소녀 시란의 일기를 보면 더욱 그렇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경험한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보이는 모습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잘 못된 상황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결국 시란은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일어났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팔레스타인을 증오하고 테러를 증오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했다고 가정하는 것 부터 시란의 역사 의식이(네덜란드에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가할 수 가 없는데 가정을 한 것이다.) 바로 전쟁과 분쟁의 안타까움이다. 결국 시란은 자라서 기성세대들과 똑같이 팔레스타인을 대하지 않을 까하는 염려가 드는 것은 내가 과정된 생각일까?

전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것은 아이들의 사고와 기억. 행동 모든것을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그것이 좋은 쪽이기보다는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 

지금 이라크에 파병된 대한민국 군대도 마찬가지다. 국익을 위해서? 과연 얼마만큼의 국익이 왔는지 올것인지 권력자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국익만을 외친다. 그 국익 앞에 이라크 어린이들과 국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제발 권력자들이여 이책을 읽고 심심풀이 놀이?(전쟁) 그만두길 바란다.